코스맥스재팬 어재선 사장, 일본화장품 ODM·유통구조와 ‘신뢰’의 조건을 말하다.
일본 화장품 시장은 ‘보수적이지만 큰 시장’으로 불린다. 빠른 유행보다 완성도와 안전성, 그리고 장기적 신뢰가 구매와 유통을 좌우한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 화장품이 일본 수입 1위를 수년간 이어가는 가운데, 현장에서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코스맥스재팬 어재선 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일본 시장 공략의 핵심을 “속도만큼, 혹은 그보다 먼저 신뢰”라고 정리했다.
어 사장은 일본 거주 30년 내외의 경력을 바탕으로 브랜드사 일본 사업 책임자 경험을 거쳐 코스맥스재팬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일본 시장은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전제는 한국 브랜드가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화장품은 90%가 오프라인… 구조가 다르다”
어 사장이 반복해 언급한 일본 시장의 첫 번째 특징은 유통 구조다. 일본의 상거래는 여전히 오프라인 비중이 높고, 화장품은 그 경향이 더 강하다. 그는 “일본은 상거래 전체가 오프라인 80% 수준이고, 화장품은 90%가 오프라인”이라며 “온라인이 작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면 온라인 성장 여지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선 큐텐(Qoo10)의 영향력을 특히 강조했다. “일본에서 오프라인 입점을 노린다면, 바이어들이 큐텐 실적을 본다”는 설명이다. 단순 매출보다 리뷰의 질, 재구매율, 반품률, 메가 행사(세일 이벤트) 시 카테고리 랭킹 등이 현실적인 판단 지표로 작동한다는 점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다만 그는 큐텐 중심의 가격·프로모션 구조가 오프라인 진입 시 가격 정합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온라인에서 할인 전제를 깔고 형성된 가격이 오프라인 유통의 공급가·마진 구조와 충돌하면, “좋게 팔렸는데도 오프라인으로 옮기는 순간 공급가를 맞추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취지다.
“일본 ODM 개발은 1~1.5년… 한국식 속도는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일본 시장을 ‘완성도 중심’이라고 말한 어 사장은 개발 리드타임 차이를 명확히 제시했다. 일본 ODM의 평균 개발 기간이 1년~1년 반에 이르는 반면, 한국은 통상 3~6개월 수준으로 더 빠르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이 느린 이유를 단순 ‘보수성’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사용성 테스트, 안정성 테스트 등 검증에 쓰는 시간이 길고, 내부에서 ‘이 제품이 시장에 나가도 문제가 없겠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길어지면 트렌드는 지나가고, 결과적으로 가격도 상승하며, 제품화 시도 자체가 어려워지는 사례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코스맥스재팬의 차별화는 3가지: 현지화·품질·리드타임”
어 사장은 “한국의 기술력에 일본의 기준을 더한 모델”을 실제 운영 차원에서 세 가지로 정리했다.
- 제형 기술의 현지화(재설계)
한국에서 잘 팔린 제형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일본의 규제(약기법 등)와 소비자 취향에 맞춰 텍스처와 사용감을 다시 설계한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쿠션 파운데이션도 한국은 커버력을 중시하는 반면 일본은 “얇고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 선호가 강해 동일 제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 일본식 품질 기준: ‘재현성과 안정성’
그가 가장 강하게 말한 대목은 품질 편차 문제였다. “1차 샘플과 100만 개째 제품이 동일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본에서는 상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정 수준의 불량률을 가정하고 교환·추가 납품으로 대응하는 관행이 존재하지만, 일본은 ‘0점 몇 퍼센트’ 수준의 엄격한 기준이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라벨·표기·로트 관리 등 약기법 관련 사항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전량 반품·회수로 이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강조했다. “일본 고객사는 로트 단위로(예: 5000 개) 회수해 포장을 뜯고 다시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는 언급도 나왔다.
- 리드타임 최적화
한국만큼 빠르진 않더라도 일본 평균보다 빠르게, 현실적으로 8~10개월 내 완제품 출시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한다는 설명이다. “일본보다 빠르게 진행하되, 한국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맞추는 균형”을 강조했다.
“한국 화장품의 강점은 기획·제형… 약점은 ‘신뢰의 약속’”
일본에서 한국 화장품이 자리 잡은 이유로, 어 사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혁신 처방으로 적시에 내놓는 힘”을 들었다. 기획력과 제형 구현력, 빠른 신제품 순환이 강점이라는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 경계해야 할 약점으로는 단호하게 ‘신뢰’를 꼽았다. 그는 “신뢰가 무너지면 브랜드가 무너지고, 더 크게는 한국 화장품 전체에 대한 인식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뢰를 구체화하는 조건으로는 △공급 안정성(납기·수량 준수) △품질 편차 최소화(색·향·텍스처) △CS·콜센터 등 사후 대응 체계(전화 응대 문화 포함)를 제시했다.
또 일본 시장은 단기간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오래 머무는 곳을 지향해야 하는 시장”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총판을 자주 바꾸는 관행에 대해서는 “유통사들이 싫어하는 작업 중 하나”라며, 파트너십의 연속성이 신뢰와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ODM 시장은 3,500억 엔 규모 추정… 한국은 더 크다”
시장 규모에 대해 어 사장은 “공표 자료 기준 일본 ODM 시장이 약 3,500억 엔(약 3조5천억 원 수준으로 환산 가능) 정도로 언급되곤 한다”며 “다만 일본은 집계가 정확히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실제 체감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크기만 보면 일본보다 한국 ODM 시장이 더 크다고 보면 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코스맥스의 위상에 대해서는 “화장품 매출 기준으로는 코스맥스가 1위”라고 언급했다. 제품 비중은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이 큰 축이며, 단가 구조상 스킨케어의 금액 비중이 커지는 경향도 설명했다.
“민감성 피부 60% 이상… 저자극 수요는 ‘기본값’”
최근 일본 트렌드로는 저자극·기능성·지속가능성이 언급됐지만, 어 사장의 설명은 미묘한 결을 담고 있었다. 저자극에 대해서는 “일본 소비자 60% 이상이 민감성 피부라는 데이터가 있다”며 꽃가루, 미세먼지, 고령화 등 복합 요인이 ‘향·방부제·알코올 프리’ 같은 요구를 기본값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친환경 포장·탄소중립 같은 흐름은 “요구가 없지는 않지만, 가격이 오르면 채택 우선순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즉, 유럽·북미처럼 강한 드라이브로 자리 잡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ODM 3.0…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함께 찾아달라는 시대”
어 사장은 ODM의 진화를 3단계로 정리했다. 과거의 ‘싸게 만들어 달라’는 위탁 생산(OEM형)에서, ‘콘셉트에 맞는 제형 개발’ 중심의 ODM을 거쳐, 최근에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함께 정의해 달라”는 ODM 3.0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코스맥스가 추진하는 방향으로는 △소비자 인사이트 공유(전략·마케팅 조직 기반) △타깃·가격·패키지까지 포함한 선제안 △출시 후 판매데이터·리뷰 분석을 통한 개선 제안 등 ‘제조 이후’까지 포함한 지원을 제시했다. “가격이 싸지 않지만,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도 이어졌다.
“삼성에서 화장품으로… 일본에서 배운 건 ‘긴 호흡’”
개인 이력도 눈길을 끌었다. 어 사장은 “원래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마케팅을 하다가, 광고·브랜드 업무를 거쳐 화장품 업계로 들어온 것이 10년이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법인을 만들고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던 경험, 지금도 “품질 사고가 끊임없이 나오고 돋보기로 보면 보이는 먼지 하나까지 문제 되는” 현장감을 전하며 “매일이 새롭고 재미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일본 진출을 고민하는 한국 기업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일본은 결코 빨리 가는 시장이 아니다. 대신 한 번 신뢰를 얻으면 10년, 20년 장기 파트너십이 보장되는 시장이다. 단기 성과에 흔들리기보다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라.”
일본 시장을 ‘기회’로 보는 시선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기회는 ‘속도’가 아니라, ‘신뢰를 쌓는 방식’ 위에서만 열릴 수 있다는 것이 어재선 사장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인터뷰어: 송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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