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강원 춘천 출신의 정현석은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방송과 스크린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온 배우다. 성균관대 법학과를 다니다 연극에 뛰어들었고, 2003년 ‘리어왕’ 올버니 역으로 데뷔했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에서 아동극과 성인극을 넘나들며 현장을 익혔고, SBS ‘흉부외과: 심장을 훔친 의사들’(2018), ‘의사요한’(2019), 2025년 개봉 영화 ‘신명’의 신부 역 등으로 필모그래피를 확장해왔다. 그는 공연과 영화, 방송을 오가며 꾸준히 활동 중이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Q1. 2003년 ‘리어왕’ 올버니로 데뷔했다. 첫 무대에서 기억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A1. 안녕하세요, 배우 정현석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또 두근거리네요. 음… 첫 공연 때는 정말 정신없었죠. 학교에서 극회 활동하면서 관객을 만났었지만, 프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 큰 부담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부담도 잘 느끼고 긴장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첫 무대에서 긴장 덩어리 자체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야말로 ‘뚝딱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무대 뒤에서는 ‘열심히 해야지’, ‘내가 이 작품에 도움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그저 열심히만 했었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긴장이 없어지지는 않아서 두근거리는 심장이 정말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끄럽지만, 긴장감으로 똘똘 뭉쳤던 것이 기억하는 첫 무대의 제 모습이네요.
Q2. 법학전공에서 무대로 방향을 틀게 된 결정적 계기, 당시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지?
A2. 전공은 법학이었지만, 장래에 직업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저였습니다. 신입생 시절 친구 따라서 성균관대학교 극예술연구회(이하 성균극회)라는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첫 시작이었죠. 연극 작업을 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 작업을 할 때에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세상을 보는 시선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등등… 연극이라는 작업이 제가 살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연극 작업을 통해 성장할 수 있고, 나의 연기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의 반대가 제일 컸죠. 그 당시 집안의 송사가 있었는데 저희에게 너무 억울하게 전개되던 터라 법 현실에 대한 큰 실망이 있었던 아버지께서 저에게 법조인의 미래를 기대하셨는데, 그와는 동떨어진 연기의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실망이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기를 하면서 극단에서 하던 공연들을 부모님께 보여드렸고, 결국에는 부모님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저를 봐주시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다른 친구나 지인들은 전폭적으로 저를 지지해주었습니다. 제가 워낙 한 번 선택하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성격이라 주변 친구들은 모두 제 선택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주었습니다.
Q3. 연극 무대가 배우 정현석에게 준 가장 큰 훈련 효과와 동시에 감수해야 했던 리스크를 꼽는다면?
A3.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면서 처음에는 무조건 열심히, 그리고 잘하려고 했었습니다.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열심히만 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스스로 ‘왜 난 잘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러면서 점점 연기가 힘들어지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기에 연기를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죠. 바로 그 시기에 광대 워크숍과 명상 등 여러 가지 훈련을 하면서 깨달은 것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지금 내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그저 받아들이고 그에 반응하는 것이 연기의 시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제 연기가 주위에서도 느낄 만큼 다른 차원으로 확 바뀌었어요. 잘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경험하고 느꼈던 것이 제 연기 경력에서 가장 강력한 기억이면서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연극 무대의 리스크라면, 여러 회차의 공연을 하면서 그것을 항상 새로운 경험처럼 느끼고 연기해야 하는데 공연이 여러 회가 반복되면서 형식만 남고 내용이 없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내용 없이 형식만 남아 있는데 배우 스스로는 그것이 좋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긴 기간 여러 회 반복되는 공연을 하면서 생동감 있는 연기가 사라지고 그럴싸한 표현만 남아 있게 되는 매너리즘이 연극 무대에서의 가장 큰 리스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4. 방송작 ‘흉부외과’ 촬영 당시 인상적인 장면이나 제작진·동료 배우와의 협업 포인트가 있다면?
A4. ‘흉부외과’는 정말 재밌게 촬영했던 드라마였습니다. 의학 드라마 특성상 수술실 장면이 정말 많았죠. 그래서 수술실 장면을 찍는 날이면 하루 온종일, 더하면 길게는 3일 내내 수술실 장면을 찍을 때가 있었습니다. 수술실 세트에서 긴 시간을 촬영하다 보면 햇빛도 못 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촬영을 하게 되고, 긴 시간의 촬영에 피로가 쌓이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되죠.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이 작업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동료애, 더 나아가 전우애가 생기더라고요. 식사시간마다 매번 같이 밥을 먹으며 찍은 장면에 대해서 얘기도 하고, 앞으로 계획된 장면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도 내고 하면서 점점 팀워크가 좋아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흉부외과’ 촬영이 힘들었지만, 반대로 가장 즐거웠던 촬영장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오셔서 자문팀으로 참여하셔서 장면마다 현실 고증에 힘써주시고, 연출부·카메라팀·조명팀 등 스태프들도 긴장하면서 촬영하고, 배우들까지 서로의 호흡을 느껴가며 긴 시간을 투자해서 며칠을 찍어 단 몇 분짜리 명장면을 만들어냈을 때 느끼는 그 만족감이야말로 유일하게 의학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인 것 같습니다.
Q5. ‘흉부외과’ ‘의사요한’을 통해 의료 드라마를 연속으로 경험했다. 장르 특성상 별도로 준비한 리서치나 기술 자문이 있었는지?
A5. ‘흉부외과’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체외순환사 유세환 역이었습니다. 심장 수술을 할 때 심장과 폐의 기능은 정지되고 그 기능을 인공심폐기가 하게 됩니다. 피를 순환시키고 그 안에 산소를 공급하는 일을 인공심폐기가 하게 되고, 그 인공심폐기를 운용하는 사람이 체외순환사입니다(과거에는 심폐기사라고 불렀죠). 심장 수술을 할 때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으로, 의사 선생님들과의 팀워크가 완벽해야 하는 일이죠.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수술하는지 알기 위해 실제 수술하는 수술실에 참관을 가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심정지가 올 뻔한 상황도 있었고, 그것을 잘 수습하여 수술을 잘 마무리하는 모습을 봤는데, 드라마와는 다르게 아주 차분하게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실제 체외순환사 분께 인공심폐기에 대한 운용법, 기계 작동하는 원리, 기계를 작동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것, 체외순환사가 하는 일들 등등 전반적으로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동작들을 익히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Q6. 2025년 영화 ‘신명’에서 신부 역을 맡았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 참고한 실제 인물, 문헌, 현장 취재가 있었나?
A6. 영화 ‘신명’은 실제 사실과 픽션이 혼재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실제 모델은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주환 미카엘 신부님입니다. 영화의 대사들 역시 미카엘 신부님이 실제 하셨던 말씀으로, 영화보다 길었던 실제 연설 내용을 축약하여 만든 대사이며 생략한 부분 말고는 연설 내용과 거의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점이라면 실제 미카엘 신부님은 시국 모임에서 대중들을 향한 연설이었고, 영화에서는 인터뷰 형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천주교 신자인 덕분에 미사 예식이나 성당에서의 태도 등 인물이 해야 하는 행동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신부님 옆에서 복사를 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죠^^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성당에서는 저렇지 않은데…’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다가도 그런 작은 차이들이 보일 때, 영화를 보며 가지고 가던 감정선이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Q7. 오컬트 정치 스릴러라는 장르적 결을 연기 톤에 녹여내기 위해 감독과 합의한 지점이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A7. 사실 처음으로 말하는 건데, 영화 자체가 워낙 짧은 시간 안에 찍어야 하는 스케줄이었기에 신부 역할 역시 급하게 캐스팅되었습니다. 캐릭터와 영화 전반적인 이야기 등 감독님과 이야기 나누고 조율할 시간이 없었죠. 현장에서 감독님과 배우들이 모여 리허설을 하며 서로 준비한 것들은 보여주고 상대 배우와 감독님 등 서로의 생각들을 얘기하고 그러면서 장면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또한 장르적인 특수성을 생각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인물이 느끼는 것들에 집중하며 촬영에 임했습니다.
Q8. 무대·스크린·브라운관 중 현재 자신의 에너지와 가장 맞는 플랫폼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A8. 흠… 이거 어려운 질문이네요. 앞으로의 캐스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저 같은 경우는 무대 연기로 시작해서 드라마를 하게 되고, 더 나아가 영화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매체가 각기 다른 매력들이 있습니다. 공연을 위해 모든 배우가 많은 시간을 들여 모여서 연습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극장에서는 생기 있는 현장성을 관객과 교류하며 연기해나가는 매력은 단연코 무대뿐이며, 현장에서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고 다른 매체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매체는 드라마이며, 장면이나 인물에 대해 깊이 토론하고 완성도 높은 씬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영화 현장이 있죠.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영화 현장이 참 좋더라고요. 감독님과 장면이나 인물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고, 그것이 최종적으로 카메라에 담기고 얘기했던 내용이 그대로 펼쳐지는 것을 봤을 때의 성취감이 다른 매체보다 더 큰 고양감을 주는 것 같아요. 더 많은 작품에서 대중들과 만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Q9. 대본을 분석하는 루틴을 시간대별로 풀어 달라. 첫 독해부터 장면 리허설, 촬영·공연 전 워밍업까지 비법이 있다면?
A9. 대본을 받으면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자세히 읽기보다는 빠른 속도로 읽어봅니다. 이후 작품 전체에서 내가 나오는 장면의 역할을 생각해보고, 또한 인물의 상황과 입장, 느끼는 감정 등을 정리해봅니다. 그리고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분석하는데, 인물의 성격과 함께 그 인물의 형태와 움직임도 고민하며 만들어 나갑니다. 인물이 가지는 성향과 태도, 습관들은 그 인물의 움직임에 드러나고, 역으로 그런 움직임을 할 때 그 인물의 성향과 태도, 감정들이 표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인물을 만들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가지고 대본에 있는 장면을 연기해봅니다. 잘 안 될 때는 처음에 생각한 것과 반대의 감정을 해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제3의 생뚱맞은 감정들로 그 대사를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더 자연스러운 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촬영이나 공연이 다가오면, 빨리도 해보고 느리게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겁먹은 사람이 되어보기도 하는 식으로 계속 그 장면을 가지고 놀아봅니다. 한 가지 감정만을 맞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을 때 편협해지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에 최대한 자유도 높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차로 이동하면서도 연습을 많이 하는데, 상대방 대사를 녹음해 놓고 제가 받아치는 형식으로 연기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 선배님께서 이런 방법을 쓴다고 추천해 주신 후, 제가 요긴하게 써먹고 있는 방법입니다. 촬영이나 공연 바로 전에는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죠.ㅎ 그래서 저는 심호흡과 명상으로 준비 시간을 갖습니다. 긴장을 마냥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의 힘을 알게 된 후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10. 인물의 신념과 윤리를 설계할 때 자신의 경험을 어디까지 끌어오며, 윤리적 딜레마를 다룰 때 기준은 무엇인가.
A10. 인물의 신념과 윤리를 설계한다는 것이 인물을 만들어 나갈 때의 과정을 물어보는 것이죠? 제 경험이 있다면 물론 그것을 이용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제가 경험했던 것과 다르거나 그 경험의 폭과 깊이가 훨씬 큰 경우가 많죠. 일상적인 것들이야 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 인물로서 질문을 해봅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어떻게 움직일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인물의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신념과 윤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윤리적 딜레마를 다룰 때의 기준이라는 것은 제가 악역을 하는 것, 예를 들어 강간을 한다든지,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하는 배우로서의 나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합니다. 그럴 때에는 욕망 자체에 집중합니다. 인물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의 원인과 이유는 다양하며 배우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죠. 욕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그 욕구를 다른 욕구로 치환하기도 합니다. 성적 욕구를 미적(식욕) 욕구로 치환하거나, 살인의 욕구를 강렬한 소유욕으로 바꾸어 내면에 만들어내고 표현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구의 정도를 1에서 10으로 나누어 표현한다면 그 정도도 표현할 수 있고요.
Q 11. 호흡이 중요한 배우들과 함께해 왔다. 파트너 배우의 리듬을 빠르게 포착하는 본인만의 기술은 일다면?
A11. 배우 간의 호흡, 정말 중요하죠. 저는 상대 배우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말이나 표정 등 상대 배우가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을 때 자연스레 내가 표현할 것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준비한 것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주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내 것만 표현하려고 하면 연기의 조화가 이루어질 수가 없죠. 상대방이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내 연기가 좋아지는 길이자, 둘의 호흡이 완성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12. 공연창작집단 ‘뛰다’와의 인연이 현장 감각과 지역성 감수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 사례를 듣고 싶다.
A12. 한예종 졸업생들이 만든 최초의 극단으로서 공연의 수준도 훌륭할 뿐더러 극단 내부적으로 워크숍 등 연기 훈련에도 매진하는 매우 학구적인 성향의 극단이었습니다. 공연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또 공연을 하지 않을 때면 매일 출근해서 신체 훈련과 연기 훈련을 하고, 새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하거나 새로운 연기 워크숍을 통해 연기력을 늘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가면 연기, 인형 연기, 움직임, 그리고 발성과 소리의 다양한 표현법, 아크로바틱과 악기 연주 등 극단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죠. 무엇보다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인물에 대해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제 연기의 근간을 세우게 되었죠. 앞서 말씀드렸던 ‘인물을 만들 때 그 인물의 자세와 움직임으로 그 인물을 구성해 나간다’는 것도 ‘뛰다’에서 배웠던 방법이었습니다(이 방법은 유명한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미카엘 체홉의 테크닉입니다).
Q 13. 롱런을 위한 체력·멘탈 관리법. 식이·수면·발성·근력 루틴을 공유해 달라.
A 13. 아… 뭔가 반성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사실 특별한 관리를 하고 있지 않아서요(머쓱). 멘탈 관리를 위해 명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긴장 상황에 놓일 때가 많고 심적으로 약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호흡을 통한 명상을 통해 긴장도를 완화시키고 안정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디션을 떨어지거나, 미팅에서 잘 못했을 때 배우가 느끼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기대하던 작품이면 더 그렇죠.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마음으로는 100의 충격이 오게 되죠. 저도 처음에는 많은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천히 생각해 보았죠. 내가 지금 이 기회에 붙을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내가 한 번 오디션을 보면 당장 한 번에 붙을 수 있을까? 그게 힘들면 두 번 보면 붙을 수 있을까? 세 번… 네 번… 열 번이면 한 번 정도 가능할 수도 있고, 스무 번 보면 한 번은 가능하겠지? 그럼 오디션을 스무 번 보면 한 번 된다고 생각하고 20개 찍을 수 있는 쿠폰이 있다고 생각하자. 한 번 떨어질 때마다 하나씩 도장을 받아서 스무 개 채우게 되면 한 번은 붙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자, 한 번 두 번 떨어지는 것도 내게 긍정적인 의미를 준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떨어지는 것이 마냥 100의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닌 쿠폰에 도장을 찍는 의미를 주었으니까요. ‘20개 쿠폰 도장찍기’ 방법, 멘탈을 지켜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Q14. 배우 경력에서 분기점이 된 작품과, 그 작품이 열어준 다음 기회는 무엇이었는지?
A14. 연극에서는 2005년 ‘하륵 이야기’라는 작품입니다.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고 수준 낮은 아동극을 하며 지내던 시기에 우연히 그날 마감이었던 오디션 공고를 보고 얼른 신청서를 넣고, 운 좋게 서류 통과하고 면접 보고 합격하여 ‘뛰다’와 인연을 맺어준 작품입니다.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을 ‘뛰다’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연기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을 만들어준 소중한 작품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별에서 온 그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대사도 별로 없고, 정말 잠깐씩만 나오는 역할이었는데 ‘별그대’에서 전지현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기자 역할을 한 이후, 몇 년간 기자 역할은 원없이 했던 것 같아요. ‘펀치’, ‘비밀의 숲’에서도 고정 기자 역할로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 포문을 열어준 작품이라 ‘별에서 온 그대’가 떠오르네요.
영화에서는 개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인권을 다룬 독립 장편 ‘향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북한의 로동단련대가 주된 배경인데, 로동단련대의 수장인 로동단련대장 역할을 제가 맡았죠. 폭력과 성착취가 만연한 곳의 대장인 만큼, 실로 악랄한 인물인 로동단련대장이었습니다. 첫 악역과 작품에서의 무게감으로 인한 부담은 있었지만, 잘 마무리하고 화면으로 보았을 때 정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향미’의 감독님과 이후 ‘1만 킬로미터’라는 영화도 같이 찍고, 앞으로도 좋은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또 준비하고 있습니다.

Q15.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배역, 반대로 피하고 싶은 서사나 표현이 있다면 그 이유는?
A15. 저는 아직 목마릅니다. 아직 해보지 않은 장르와 배역이 너무 많거든요 ㅎㅎ. 그중에서도 사이코패스 살인자 같은 ‘악역 중의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악마성을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피하고 싶다기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경우는, 극이 진행하면서 감정 표현 없이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다른 장면에서 인물의 감정이나 성격이 드러난다면 괜찮지만, 한 장면에 기능적인 역할만으로 끝나면 너무 아쉽습니다.
Q16. 현장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생존 팁 한 가지와, 절대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은 한 가지는?
A16. 후배 배우 여러분 고생 많으십니다. 요즘… 현실이 녹록지 않죠? 현장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팁을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것은 바로 ‘촬영 현장을 회사로 인식’하기입니다. 드라마 혹은 영화라는 큰 회사에 나는 배우 쪽 부서의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연출이나 다른 스태프들은 부서만 다를 뿐 같은 회사의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나도 더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대하고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 점점 더 고립되고 현장이 힘들어집니다. 마음을 열고 모두 동료로 생각하면 분명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예상치 못할 상황들을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 좋지 않은 상황이죠. 그럴 때 타협하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라는 유혹이 찾아옵니다. 상황도 어려운데 이 정도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죠. 타협하지 말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다면 분명히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Q17. 개인 채널(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원칙과, 작품 홍보와 사생활의 경계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A17. 요즘은 SNS가 소통의 공간이자 홍보의 수단이며, 정보 습득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매니저 없이 혼자서 활동하다 보니 SNS를 어떻게 활용할지 정확한 원칙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나친 개인정보의 공개는 피하려고 합니다. 가족들 개인정보 역시 조심해서 관리하고 있고요. 사생활은 제한된 정보 내에서 올리고, 작품 홍보가 필요할 때 현장 사진 등을 올려 SNS에 홍보하고는 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SNS 운영 원칙도 세우고, 배우로서의 홍보와 작품 홍보, 또 팬들과의 소통 등 여러 활용 방안을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ㅎㅎ.
Q18. 10년 뒤 배우 정현석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할 키워드 세 가지를 꼽는다면.
A18. (곰곰히 생각에 잠기다가)…
▲ 대기만성: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더 노력해서 좋은 연기로 작품에서 만나고 싶어요.
▲ 야누스: 하나의 머리에 두 개의 얼굴이 있는 야누스처럼, 동시에 양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야누스: 하나의 머리에 두 개의 얼굴이 있는 야누스처럼, 동시에 양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욕심쟁이: 욕심쟁이로 보일 만큼 많은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파이낸셜뉴스 일본법인은 일본에서도 주목받는 배우 정현석의 활동을 주기적으로 일본어로 기사화 할 예정이다. 앞으로 실력이 탄탄한 수준급배우의 일본진출의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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