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에드 데이비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 타이 타일런 킹스턴어폰템스 시의원, 임혜정, 앤드루 울드리지 킹스턴어폰템스 시의원. / 사진=본인 제공
신뢰를 쌓고, 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다음 사람을 세우는 정치
런던=송원서
영국 정계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정치인 임혜정은 자신의 삶을 성공담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란 결국 “다음 사람이 올라설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치는 개인의 입신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 다음 세대의 발판을 놓는 작업이다. 예원학교에서 첼로를 전공하던 학생이 어린 나이에 홀로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과 법, 시민사회 활동을 거쳐 정치의 현장에 닿기까지, 그의 삶을 관통한 것도 결국 같은 단어들이었다. 신뢰, 책임, 그리고 다음 세대.
현재 임혜정은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이자 지역구 국회의원인 에드 데이비 경 측에서 한영 관계를 잇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의 출발은 정치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예원학교 재학 시절, 우연히 들어간 영국 문화원 오디션 현장에서 첼로를 연주한 일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몇 달 뒤 도착한 한 통의 편지가 영국 유학의 문을 열었다. 영국 왕립음악대학 측이 나이가 어린 그를 퍼셀스쿨에 추천한 것이다. 지금이야 영국 유학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음악 유학이라면 독일이나 이탈리아, 미국이 먼저 거론되던 때였다. 그럼에도 그는 영국행을 택했다. 1996년, 어린 나이에 홀로 영국으로 건너갔다.
음악은 끝까지 그의 삶에 남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퍼셀스쿨과 음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그는 다시 법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삶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닿는 공부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섯 곳의 로스쿨에 지원해 모두 합격한 뒤, 그는 에든버러대에서 국제법과 유럽법, 조세법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법을 배운 뒤에도 그의 시선은 대형 로펌이 아니라 사람에게 머물렀다. 약자를 돕고 싶어 택한 법이었지만, 실제 로펌의 세계는 다른 논리로 돌아갔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그는 그 삶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느꼈다. 대신 시민상담과 법률 지원, 자원봉사의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탈북민을 비롯해 영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그는 정치의 필요를 더 절실히 체감했다고 했다. 한 사람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넓은 삶을 바꾸려면 결국 제도와 정책이 움직여야 한다는 이유였다.
정치 입문의 계기도 그렇게 찾아왔다. 그는 민주평통 활동을 하며 코로나 시기 청년 컨퍼런스를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영국 정치권과 접점을 넓혔다. 영국 정치인들이 한국과 한반도 문제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바깥에서 설명만 할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의 문턱은 낮지 않았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 후보로 나설 예정이었지만, 선거 직전 건강 악화로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대신 다른 후보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당선됐다. 자신이 바닥부터 다져놓은 자리에 끝내 스스로는 서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그 일은 큰 좌절로 남았다. 그는 한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고 거의 숨어 지내다시피 했다고 했다.
그를 다시 불러낸 것은 거창한 제안이 아니었다. 당 대표실에서 “30분이든 1시간이든 와서 좀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다시 오피스를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 시간은 결국 ‘Anglo-Korea Relations Advisor’라는 공식 역할로 이어졌다. 임 자문관은 이 대목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자신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은 그의 노력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패로 끝난 줄 알았던 시간이 사실은 신뢰로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이후 그는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교육, 문화, 지역 협력 프로젝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대학과 대학을 연결하고, 지방정부와 지역사회를 잇고, 한국 문화를 영국 현지와 연결하는 일에 깊이 관여했다. 겉으로는 행사와 교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율과 설득, 신뢰 구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들이다.
요즘 그가 가장 자주 꺼내는 단어는 “다음 세대”다. 그는 앞으로 15~20년 안에 재영 한인 사회에서 총리급 정치인에 도전할 수 있는 인재를 두세 명은 키워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영국 국회에는 한국계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임 자문관은 “정치에서 신뢰를 쌓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자리를 잡는 데 5년, 10년이 걸리고, 그 위에서 다시 다음 세대를 끌어올리려면 또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조심한다고 했다. “늘 살얼음판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자신이 여기서 무너지면, 뒤에 오는 사람의 기회는 30년, 40년 뒤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정치는 단순한 개인 도전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문을 열어놓는 일에 가깝다.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청소년과 지역사회로 이어진다. 그는 지금의 아이들이 준비해야 할 세계는 2027년이나 2028년이 아니라 2040년 이후라고 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점수만이 아니라 적응력, 유연성, 공감 능력, 회복탄력성,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아이들이 사람과 부딪히며 배우는 기본적인 사회적 기술이 약해졌다는 점을 우려했다. 온라인에서는 대답을 미루고 갈등을 피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표정과 말투, 침묵과 충돌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 바로 그 과정에서 사람이 관계를 배우고 사회를 익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구상하는 지역정치는 예산과 도로에만 머물지 않는다. 방과 후 청소년들이 모일 수 있는 유스클럽,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 작은 일자리 경험, 지역 상점과 연결된 실습 기회 같은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그는 봤다. 특히 식당과 카페, 펍 같은 공간에서의 첫 노동 경험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훈련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낯선 사람을 응대하고, 실수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임 자문관은 영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도 숨기지 않았다. 이민과 난민 보트 문제, 청년 실업, NHS의 긴 대기, 전기·가스·식료품 가격 급등으로 인한 생계비 위기 등은 지금 영국 사회를 흔드는 핵심 의제들이다. 다만 그는 영국을 위기만의 나라로 보지는 않았다. 영국에는 생명과 환경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고, 자연과 동물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살아 있다고 했다. 반면 한국은 부지런함과 성실함, 끝까지 밀어붙이는 실행력이 강점이라고 봤다. 결국 서로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AI 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비슷했다. 동아시아는 기술 발전 속도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규범과 제도 설계에서는 여전히 서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과 서가 함께 만나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기술만 앞서고 제동장치가 없으면 위험하고, 규범만 있고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무력하다. 앞으로의 교육과 정치, 국제협력은 결국 이 둘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정치의 이유를 짧게 설명했다. “내가 행복하고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앞집 옆집 뒷집도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데 개인만 안전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정치 역시 거대한 구호보다 실제로 작동하는 지역사회의 힘을 더 중시한다. 아이들이 모일 곳이 있고, 이야기할 공간이 있고, 실패를 겪어볼 기회가 있고, 처음 사회를 배울 작은 일이 있는 공동체. 그는 바로 그런 곳에서 다음 시대의 시민과 정치인이 자란다고 믿고 있었다.
임혜정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신뢰를 쌓고 어렵게 자리를 만들며 그 자리를 혼자 차지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이야기다. 자신이 올라서는 것보다 다음 사람이 올라설 수 있게 만드는 일. 그가 말하는 정치의 핵심은 결국 그 지점에 있었다.
송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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