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과 나눈 대화는 통일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탈북 외교관 출신으로 한국에 정착해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이제 민주평통 사무처장으로 통일과 남북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말 속에는 통일을 향한 열망과 북한 내부의 변화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녹아 있었다. 대화는 북한 체제의 현실에서부터 통일의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이어졌고,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는 통일의 의미를 발견했다.
태영호 처장은 북한 가정의 수도꼭지 이야기를 꺼내며 체제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설명했다. 북한 집에는 찬물과 더운물이 나오는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지만, 그의 아들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더운물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수도관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기능은 잊힌 채 무용지물로 방치된 모습이 바로 북한 체제의 현실을 상징한다고 그는 말했다. 젊은 세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국에 대한 기대를 잃고, 오직 생존에 힘쓰고 장마당에서 길을 찾으며 성장해왔다. 그는 이런 세대의 변화가 북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한국 드라마가 북한 사람들에게 주는 강렬한 영향을 이야기하며, 한 탈북 학생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 학생은 사랑의 불시착을 보고 “한국에 가면 나도 재벌가의 딸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현실은 상상과 달랐지만, 태영호는 “그런 꿈이 없었다면 그 학생은 탈북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라며, 북한 주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콘텐츠의 힘을 설명했다. 북한 정부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철저히 금지하지만, 이미 사람들 속에서 피어나는 변화의 열망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조총련 내부의 변화도 흥미로웠다. 그는 최근 조총련 출신 고위 인사들이 자신을 찾아와 북한의 두 개 국가론 발표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통일만이 살 길이라며 교육받으며 평생 북한에 충성해왔는데 이제는 평화통일을 금기시 하는 북한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태영호는 이러한 조총련 내부의 변화가 북한 체제의 균열을 보여주는 신호이며, 남북 관계 개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의 시기에 대한 질문에 그는 독일의 예를 들며 조심스럽지만 확고한 답을 내놓았다. “독일이 헌법을 개정한 지 15년 만에 통일을 이루었죠. 북한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북한 젊은 세대가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중요한 신호로 보았다. “10년 후 지금의 20대가 30대가 되고 북한 사회의 주류가 될 겁니다. 이들은 당국으로부터 받은 혜택이 없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애착도 없습니다. 그들의 불만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결국 통일을 향한 중요한 동력이 될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 평양 문화어 보호법을 통해 한국식 표현을 철저히 금지하려고 하는 일화도 인상 깊었다. 그는 친구들끼리 “오빠야”라고 부르다 적발된 이야기를 소개하며, 신분증을 대조하며 “너희가 진짜 형제냐”고 묻는 당국의 어처구니 없는 대응을 전했다. 한국 드라마와 문화가 이미 북한 내부에 깊숙이 스며들었고, 당국의 통제는 점점 힘을 잃고 있다. 태영호 처장은 이런 문화적 변화가 통일을 앞당기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와 국제사회의 협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상하이 국제학교 사건을 예로 들며, 작은 행동이 어떻게 국제적인 압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탈북민들이 학교에 들어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자, 학생들이 그 장면을 찍어 SNS에 퍼뜨렸다. 결국 중국 당국은 탈북민들을 한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민주평통 글로벌 특위 위원들이 각국 외교부와 협력해 탈북민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큰 압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북한에서는 한때 “통일렬차 달린다”라는 노래가 자주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 노래가 금지되었다고 그는 전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열차를 탈 때마다 ‘이 열차가 부산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태 처장은 작은 희망이 통일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일이 정부 간의 협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연결과 일상의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민주평통과 탈북민 사회가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조언했다.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차별 없이 정착하는 모습이 북한 주민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줄 것입니다. 그들에게 차별 없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통일 열망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는 탈북민이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통일의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통일은 우리가 쌓아가는 희망과 행동 속에서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는 과정이다. 북한이 두 개 국가론을 선언했어도 변화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쌓이고, 작은 행동들이 쌓여 큰 변화를 이끌어내듯, 우리의 역할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는 것이다. 통일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준비하는 것이다. 태영호 사무처장과의 대화로 통일이 과연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막연했던 머릿속이 깔끔히 정리된 느낌이었다.

송원서 (Ph.D.) 민주평통 글로벌특위 위원
일본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동경대학교 객원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