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쌀이 사라졌다. 생산량은 증가했지만 시장에 유통되는 쌀이 줄어들면서 1년 만에 쌀값이 70% 이상 폭등했다. 쌀 수출 대국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품귀 현상에 일본 정부는 결국 비축미 방출을 결정했다. 재난·재해 상황 외에 정부 비축미를 푸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라진 쌀 20만t
쌀 부족으로 인해 일본 시민들의 생활 양식이 달라졌다. 방송과 유튜브에는 ‘도시락값 절약법’이 인기 콘텐츠가 됐다. 유명 패밀리레스토랑 제니즈는 지난해 12월 공깃밥 가격을 209엔에서 253엔으로 인상하고, ‘밥 무료 추가’ 서비스를 폐지했다. 일부 라멘 가게도 공깃밥 가격을 크기별로 받기 시작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쌀 부족 현상은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화됐다. 2023년 5㎏당 2500엔이었던 쌀 소매가격은 3000엔을 돌파했고, 올해 1월에는 3628엔까지 치솟았다. 1년 전 같은 달(2030엔)과 비교하면 78%나 오른 수치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23년 쌀 생산량은 662만4000t으로 전년보다 7만7000t 감소했다. 2024년 7월 말 기준 쌀 재고도 전년 대비 40만t 적은 82만t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문제는 생산량이 아니라 유통량이었다.
실제로 2024년 쌀 생산량은 679만2000t으로 오히려 증가했음에도, 시장에 나온 쌀은 줄어들었다. 일본농업협동조합(JA) 조사에 따르면 2023년보다 20만6000t이나 감소한 215만7000t만이 시장에 공급됐다. 이에 대해 ‘관광객 증가로 소비량이 급증했다’, ‘난카이 대지진을 우려한 사재기 때문’ 등의 추측이 나왔지만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유통업체의 매점매석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통계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
결국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13일 비축미 20만t을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15만t을 먼저 풀고, 추가 방출 여부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결정할 방침이다. 쌀은 3월 말에야 마트에 풀릴 예정이다.
농업 정책 손 뗀 일본 정부, ‘레이와 쌀 대란’ 초래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여름부터 쌀 부족 조짐이 보였지만, 농림수산성은 비축미 방출을 거부했다. 사카모토 테츠시 당시 농수상은 “수확기가 되면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며 여론의 압박에도 비축미 공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 판단은 실패로 돌아갔다. 햅쌀이 시장에 풀린 후에도 가격은 오히려 계속 상승했다.
일본 정부가 농업 생산량 조사를 소홀히 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농림수산성 출신 와타나베 요시아키 니가타식량농업대 명예학장은 “과거에는 수만 명의 조사원이 쌀 생산량을 집계했지만, 예산 문제로 표본 수가 대폭 줄어 전체 생산량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쌀 시장이 점차 민간 주도로 운영되면서 정부의 개입력이 약해진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정부 주도로 쌀 시장을 철저히 관리했다. 1942년 제정된 식량관리법은 생산·유통·배급을 정부가 통제하도록 했다. 그러나 1995년 식량관리법 폐지, 2018년 감반제도(논 면적 제한 보조금) 폐지로 정부의 쌀 수급 개입이 축소됐다.
이로 인해 농민들의 조직력은 약해지고, 유통업체가 가격을 주도하는 구조가 정착됐다. 과거 정부가 통제하던 시절에는 일본농업협동조합(JA)이 전체 쌀 생산량의 90%를 수매했지만, 현재는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유통업체의 역할이 커졌고, 공급 조절도 유통업체의 손에 맡겨진 상황이다.
일본 언론은 장기적으로도 쌀 부족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기후 변화와 농업 인구 감소로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