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중심부에 자리한 주일한국문화원을 찾았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양국 교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 나는 공형식 주일한국문화원장을 직접 만나 그가 걸어온 발자취와 미래에 대한 포부를 들어보고 싶었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온화한 인상을 지닌 그는 “이번 60주년은 말 그대로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가 언급한 첫 번째 화두는 바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의 역사적 의미’였다. 공 원장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사실상 문화교류의 물꼬가 제대로 트인 것은 1998년 일본대중문화 개방 직후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일본 문화가 유입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 결단이 우리나라 문화 경쟁력을 높였고 한류가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한류만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일본에서 한류는 이미 대중문화로 뿌리내렸지만, 이제는 전통문화, 순수문화까지 폭넓게 알려야 할 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문화원에서는 판소리 공연을 비롯해 한지·한복·한식 등을 한데 묶어 소개하는 전통문화 행사를 준비 중이다. 공 원장은 이를 가리켜 “문화도 편식은 옳지 않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했다.
공 원장에게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사업의 구체적인 사례를 묻자, 가장 먼저 지난 3월 5일에 열린 ‘한일 음악의 우아함과 정취’ 공연이 언급되었다. 판소리와 양국 전통악기 협연으로 이루어진 무대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일본대사가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그는 “이처럼 전통 문화가 가진 깊이 있는 매력을 일본인들에게 경험하게 해주면, ‘내가 생각한 한국이 이 정도로 다양하고 풍부했나’라는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협력으로 나가는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일본 콘텐츠 시장은 2023년 기준 세계 3위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를 단순 소비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 개척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중국 시장도 크지만, 일본은 콘텐츠 인프라가 탄탄하고 협업에도 긍정적입니다. 이렇게 함께 만들고 함께 해외로 진출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 가능해지겠지요.”
청소년과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교류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오자, 공형식 원장은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이며 눈을 반짝였다. “요즘 일본의 중·고생들, 대학생들은 한국을 굉장히 가깝게 느끼고 있어요. K-POP이나 드라마가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고, 간단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이 시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지원하면 서로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문화원은 주말 한국어 강좌, 청소년 대상 한국어 말하기 대회, K-POP 오디션(K)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고, 향후 일본의 지방을 직접 찾아가는 행사 역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작년 4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재개된 ‘한일 축제한마당 2024 in Tokyo’에 관해서도 그는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대형 스타가 오지는 않아도, 양국 시민이 가족 단위로 모여 K-POP 무대를 즐기고, 전통공연을 관람하고, 한국 음식을 맛보는 축제예요. 바로 이 점—풀뿌리 차원의 어울림—이 한일 교류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팬데믹 시기에도 온라인 축제를 통해 중단 없이 이어온 것을 두고 그는 문화원이 앞으로도 “‘시민이 주체가 되는 교류행사’를 지속적으로 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화교류에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국관계가 정치적 갈등으로 흔들릴 때마다, 일본 내 혐한 분위기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러나 문화적인 접점이 확대되고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면, 혐한 세력이 설 자리는 줄어듭니다.” 공형식 원장은 혐한 정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되, 반대로 이를 견제하는 양식 있는 일본 시민들도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곳곳을 직접 찾아가며 한국을 알리는 ‘찾아가는 한국문화원’ 같은 사업이 바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예방하고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올해 공개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로고와 슬로건’ 활용 계획 역시 궁금했다. 공 원장은 이를 두고 “문화원이 추진하는 코리아 시즌 행사의 상징”이라고 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나 축제한마당 행사장에서도 로고와 슬로건을 적극 노출해 “올해가 60주년임을 일본 전역에 알리는 계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공식 로고를 정부 차원에서만 쓰는 게 아니라, 민간 분야에서 더욱 폭넓게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일 우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이런 상징들은 꽤 큰 힘이 되거든요.”
끝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방향성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한일 젊은 층은 서로를 동등하게 바라보고, 정치적 이슈에서 좀 더 자유로워요. 10년, 20년 뒤에는 그들이 양국사회의 주축이 되겠죠. 그 시기에 과연 어떤 공감대를 지니고 있느냐가 두 나라의 관계를 결정할 겁니다. 우리는 그 기반을 닦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억지로 방향을 정해 주기보다는, 스스로 배우고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는 장을 계속 마련하는 거죠.”
환한 미소를 띤 채 다음 준비를 위해 자리를 떠나는 공형식 원장을 보며, 나는 문화교류의 깊은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정치나 경제적 사안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음악 한 곡, 한 편의 공연, 한 번의 문화 체험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강력한 힘이 있다. 더욱이 6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과거의 과오를 딛고, 서로를 존중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에 공형식 원장은 문화교류가 ‘밝은 등불’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올 한 해가 양국의 우호를 넓히고 깊이는 데 소중한 전환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 / 송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