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물망초人에 선정된 도쿄大 명예교수 오가와 하루히사(84세). 출처=사단법인 물망초 제공
북한인권운동은대한민국보다일본이먼저시작했다. 한국은 1996년, 일본은 1994년에 북한인권운동시민단체 NGO가결성됐다. (사)물망초는한국보다도빨리북한인권운동을시작한도쿄대오가와하루히사(1941년3월 8일생, 小川晴久) 명예교수를 ‘제3회물망초人’수상자로선정했다.
때마침 2024 올해는재일교포북송이시작된지 65주년이되는해다.
중국철학의대가로한국에도잘알려진오가와하루히사(이하 ‘오가와’라함) 교수는일본에서 ‘북한인권운동의시조’로불린다. 1994년에 ‘북조선귀국자의생명과인권을지키는모임(北朝鮮帰国者の生命と人権を守る会)’ 을창설해대표를역임한이후 2008년에는정치범수용소폐지를주장하는 No Fence(북조선강제수용소를없앨행동모임, 北朝鮮の強制収容所をなくすアクションの会)를창설해지금도대표를맡고있는현역이다. 올해 84세.
그러나오가와교수는젊었을때좌파지식인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매료돼재일한국인북송을지지하던학생이었다. 사회주의를동경하던오가와교수가북한에대한생각을바꾼것은 1993년 8월도쿄에있는한식당에서열린 ‘북조선귀국자모임’에참가한 일이었다. 이모임에서식당여주인이 ‘북송선을탄세아들이정치범수용소에끌려가고생하다한명은죽었다는소식을한참뒤에야들었다’는증언을했다. 그자리에있던다른 여성은 ‘오빠가정치범으로체포돼숨진사실을알고나서조총련에 2000만엔을바치고 올케를구출했다’는증언도했다. 그여성은평양방송의일본어아나운서로활동하던재일교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