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우 민주평통 일본동부협의회 청년기자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친 거목,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25일 향년 7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민주평통 아시아·태평양 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방문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전해진 비보에 일본 동부를 비롯한 전 세계 자문위원들은 깊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평화 통일의 최전선에서 맞이한 마지막 순간
고(故)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마지막은 그가 평생을 걸어온 길과 닮아 있었다. 고인은 지병과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통일 담론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베트남은 과거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와 번영을 이룩한 상징적인 곳이다. 그곳에서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재외동포들의 통일 역량을 결집하고, 아태지역의 평화 연대를 모색하는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민주평통 일본동부협의회의 한 자문위원은 “평소 회의 때마다 ‘통일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며, 준비된 자만이 그 문을 열 수 있다’고 강조하시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선하다”며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투사에서 평화의 설계자로
고인은 1970년대 유신 독재에 맞선 학생운동가로 시작해, 7선 국회의원, 국무총리, 당 대표를 역임하며 대한민국 정치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에게 그는 정치인을 넘어선 ‘평화의 설계자’였다.
특히 수석부의장 취임 이후, 고인은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도 ‘담대한 구상’을 뒷받침하며 민간 차원의 통일 운동과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역설해 왔다. 그는 항상 “통일은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특히 해외 동포와 청년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이 통일의 주역”… 남겨진 과제
청년 자문위원들에게 고인은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스승이었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기성세대가 평화의 초석을 다졌다면, 그 위에 통일이라는 집을 짓는 것은 청년들의 몫”이라며 청년 위원들의 적극적인 목소리를 독려했다.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우리 일본동부협의회 청년 기자단과 자문위원들은 황망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슬픔에만 잠겨 있기에는 고인이 남긴 발자취가 너무나 크고 뚜렷하다. 베트남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평화 통일’의 염원, 그 숭고한 뜻은 이제 남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았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토록 염원하던 분단 없는 세상에서 편안히 쉬시기를 기도한다.
“수석부의장님, 당신께서 다지신 평화의 길, 이제 저희 청년들이 멈추지 않고 이어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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