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를 맞아 온라인과 일부 매체를 통해 무슬림 정치인이 뉴욕시장이 되어 이슬람 경전 쿠란 위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그러나 현재 뉴욕시장은 민주당 소속의 에릭 애덤스이며, 무슬림 정치인으로 거론된 조란 맘다니는 뉴욕주 하원의원이다. 사실관계는 명확히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사실과 다른 장면이 촉발한 문제의식 자체는 가볍지 않다. 종교의 자유를 헌법적 가치로 삼아온 미국 사회에서 정치인이 종교적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더 이상 이례가 아니다. 논점은 특정 종교의 상징이 아니라, 그 장면을 바라보는 한국 종교의 태도에 있다.
미국의 종교는 역사적으로 삶과 공동체 속에서 행동으로 검증돼 왔다. 정치인의 종교가 논란이 되지 않는 이유는 신앙이 정책과 시민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기독교는 사회적 쟁점 앞에서 선택적 침묵을 반복해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할랄 논쟁이나 특정 종교 이슈에는 격렬했지만, 권력과 결부된 구조적 불의 앞에서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내부의 교리 논쟁과 이단 규정은 넘쳤으나, 사회를 향한 책임 있는 언어는 충분했는지 돌아볼 대목이다.
상징적 지도자들이 각종 논란 속에서 신뢰를 잃는 동안에도 근본적 질문은 제기되지 않았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라는 가르침이 있었는지, 종교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충분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AI는 냉정한 데이터를 제시한다. 출산율, 이민, 문화 확산을 고려하면 향후 수십 년간 종교 지형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신념의 강도보다 생활 방식과 공동체 구조가 지속성을 좌우한다는 분석도 반복된다. 중동의 분쟁 역시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니라 인구 구조와 종교, 국가 정체성이 얽힌 복합 문제다. 이 현실을 외면한 채 구호만 반복하는 종교는 설득력을 잃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청년에게 삶의 해법을, 노년에게 존엄의 언어를, 사회에 윤리적 기준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 공백을 메우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AI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에게 삶의 방향과 선택의 옳고 그름, 의미를 묻고 있다. 종교가 외면한 질문을 기술이 대신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 기독교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정치 권력과의 거리 두기, 교리 논쟁을 넘어선 사회적 책임과 행동, AI와 과학을 악마화하지 않는 윤리적 해석, 숫자가 아닌 삶의 질과 공동체 회복에 대한 집중이다. 사실과 다른 장면이 던진 질문은 오히려 선명하다. 특정 종교의 상징을 비판할 자격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은 종교에게만 있다. AI 시대, 종교는 다시 묻고 또 답해야 한다. 인간에게 아직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