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이 여전히 선진국을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 머물러 있고, 정권 교체 때마다 발생하는 정책 단절로 기술주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직속 ‘기술주권 워룸(War room)’ 설치를 통해 정권을 초월한 장기적 국가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종현학술원은 8일 발표한 ‘기술패권 시대, 흔들리지 않는 과학기술 국가 전략’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유석 최종현학술원 대표는 “정권 교체기에 기술과 같은 중장기 이슈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어 정파를 초월한 독립적 시각에서 보고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고질적 문제로 ‘선택과 집중’ 방식의 추격 전략을 꼽았다. 염한웅 포스텍 교수는 “과도한 선택과 집중으로 인해 혁신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기술 리더십 확보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중국 사례를 들어 “압도적 규모와 속도로 기술 로드맵을 선도하는 중국을 참고해야 한다”며 “한국도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 없이는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세계 대학 연구 경쟁력 순위 상위 10위 중 8곳을 차지했고, 국가 혁신지수에서도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정책 단절성 문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연구사업이 폐지되거나 축소되면서 연구자들이 단기 성과 중심의 연구 주제에 집중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보고서는 대통령 직속의 ‘기술주권 워룸’ 설립과 함께 인재 확보 전략으로 ‘브레인 홈 코리아’ 정책 도입을 제안했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는 “국내외 우수 인재가 한국을 연구와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도록 비자 제도 개편과 가족 단위 정착 지원 등 종합적 인재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