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통합과 미래로 가야 합니다.”

2025년,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재일동포사회의 발전 방향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심에는 ‘뉴커머’라는 이름으로 80년대 한국에서 일본에 정착한 신정주자들을 대표하며, 2001년5월20일 재일본한국인연합회 창립을 주도한 조옥제 전 회장이 있다. 조 회장은 현재도 상임고문으로서 다양한 동포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동경 신주쿠 인근의 사무실에서 조 회장을 만나 그의 지난 여정과 비전을 들었다.

Q1. 먼저, 일본에 오시게 된 계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1985년 10월, 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섰고, 마침 한국에서도 유학을 권장하던 시기였죠.서울 88올림픽 직후 노태우 정부의 여행자유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많은 한국 청년들이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저 역시 미래를 고민하던 중 이곳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쿄로 오게 됐습니다.
Q2. 유학 후 일본에 정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졸업 후 귀국도 고민했지만, 일본 KDD에서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국제전화 서비스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에 머물게 됐고, 전국에 흩어진 한국인 고객들과 소통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동포사회 활동의 출발점이었죠.
Q3. 당시 일본 내 한인사회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 소위 ‘뉴커머’라 불리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진출한 신정주자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재일동포 사회와는 또 다른 성격의 이민자들이었죠. 하지만 이들을 위한 조직이나 소통 창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을 연결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고, KDD의 지원으로 한인 로컬 신문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습니다. 7년간 이어진 그 작업이 재일본한국인연합회 창립으로 이어졌습니다.
Q4. 재일본한국인연합회는 어떻게 창립되었습니까?
2000년 무렵, 동포사회 내에서 뉴커머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제가 발행하던 신문 2000년 신년호에 “이제는 우리 목소리를 낼 때”라는 제목의 발행인 칼럼을 실었는데, 그 반향이 컸습니다. 이후 준비모임을 거쳐 2001년 5월, 동경에서 공식적으로 한인회를 창립하게 됐습니다.
Q5. 한인회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초창기에는 정말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사무실도 제 회사 공간을 함께 쓰며 시작했죠.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분들과 함께 동포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다뤘고, 점차 조직이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의식을 확산시킨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Q6. 작년(2024년) 동경한인회 통합에 큰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한인들이 존재하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 이곳 동경에서도 단체 내부의 갈등으로 한동안 분열이 있었습니다. 2023년부터 이어진 통합 논의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김옥채 주요코하마 총영사님의 중재 아래 갈등을 봉합하고, 양측이 대등하게 하나로 합치기 위해 함께 노력했습니다. 통합 합의서 작성부터 신임 회장 추대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고, 지금도 고문으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양측 모두가 통 큰 양보를 해준 점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7. 민단과 뉴커머 커뮤니티의 교류활동도 자주 언급해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민단이 이제는 과거의 이념 갈등과 세대 갈등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뉴커머 역시 동포사회의 큰 틀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하고요. 양측이 서로 존중하고 연대해야 진정한 의미의 재일동포 통합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세대교체와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Q8. 향우회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경남 출신이지만 외가가 경북 구미라는 인연으로 2003년부터 경상북도의 해외투자유치자문관(현재는 경상북도해외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동경 경상남북도 도민회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향우회는 단순한 친목을 넘어 고향과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동포들이 고향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후배들에게도 고향사랑의 귀감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 경북과 경남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재해로 인해 많은 분들이 큰 피해를 입으셨습니다. 산불 피해로 고통받고 있는 고향의 이재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무겁습니다.
Q9. 동경한국학교와 청년세대 육성에도 깊이 관여해 오셨지요.
네, 동경한국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정체성과 뿌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졸업생 수가 1만3천 명을 넘어선 것도 감격스러운 일이고요. 저는 20여년전 부터 민주평통 자문위원 활동을 해오며 청년위원 발굴에 주력해 왔습니다. 동포사회는 결국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며 사명입니다.
Q10. 끝으로, 한일수교 60주년을 맞는 소회와 바람을 들려주십시오.
60년 전 한일 수교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미래를 향해 내린 대단한 결단 이었고 조국 근대화와 선진화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이제는 양국이 성숙한 협력관계로 가야 할 때입니다. 동포사회도 분열보다 연대, 갈등보다 공존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이곳에서 한국과 일본, 자이니치와 뉴커머, 원로와 청년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조옥제 회장의 목소리에는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한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분단과 갈등의 시대를 지나온 한인사회가 이제는 화합과 포용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조옥제라는 이름이 그 길잡이 역할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