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도 대학생처럼 자기 희망 과목을 선택해서 듣고 소정의 학점을 따면 졸업할 수 있는 제도이다. 조기 졸업도 가능하다. 소속 학교에 희망 강좌가 없을 경우 타교에서 강좌를 듣고 학점을 딸 수도 있다.
제도는 이상적이지만 현실 여건은 아직도 미흡하기 그지없다. 우선 학생들이 선택할 다양한 과목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과목의 교과서가 준비되어야 하고, 그 과목을 가르칠 다양한 전공의 교사를 확보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교육 당국은 그간 몇 년간에 걸쳐 고교학점제 정착을 위한 연구를 하고 이를 선도할 희망 학교를 모집했다. 많은 고교가 응모해 지원 예산을 받고 여러 해가 지났지만 실적을 낸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애당초 교과서, 교사 문제가 고교 단위에서 풀릴 성질의 사안이 아닌 것 같다.
전교조 같은 집단들은 여건이 성숙하지 못했다고 미루자고 하고,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 수능과목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을 배우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한다. 대학은 입시 제도를 우리 마음대로 고칠 수가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볼멘소리를 하고, 정치권은 여론의 역풍을 걱정한다. 장관은 제 목숨이 달린 문제이니 눈치를 보고, 대통령은 더 중요한 사안이 있는데 “복잡한 건 뒤로 넘기지 뭐”라고 한다.
논의는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2015년에 첫 개정안을 만들어 2022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문재인 정부에 와서 2025년에 실시하기로 연기한 사연의 배경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이 제도의 목표는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이다. 서양과학 교육이 도입된 이래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고교의 과학 교육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네 과목으로 나뉘어 시행되어왔다. 학생들을 가르칠 과학교사 역시 네 과목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다. 자기 전공과목으로 자격시험을 치러 교사가 되었으니 자기 전공만 가르친다. 당연히 교과서도 교사의 전공과목에 맞추어 물, 화, 생, 지 네 가지뿐이었다.
21세기 들어 과학과 기술이 융합하여 급격하게 발전하자 사회는 정부와 학계에 창의성 있는 인재 배출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하여 고교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것이다. 창의성이 목표이고, 융합은 방편이다. 창의하면 융합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과학 과목을 융합해서 교육하면 창의성이 양성된다는 취지인데, 슬로건이 거꾸로 된 것 같다.
우리나라가 언제는 모든 것 다 갖추어 놓고 시작한 적이 있던가? 아파트 입주는 끝냈는데 학교는 겨우 건물을 짓기 시작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지.
그러나 처음 이 제도를 구상했던 당사자가 돌아와 다시 장관직에 앉고, 대통령까지 킬러문항을 킬링하라고 지원 사격까지 하는 걸 보니 이제는 익은 감이 떨어질 때가 된 모양이다. 때가 무르익었으면 좋은 방안을 나누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소견을 곁들이고자 한다.
첫째 교과서이다. 개정 교육과정 목표에 보면 교과서는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교과서가 위의 목표대로 쓰인다면, 교사는 스스로 학습하는 학생들의 이해를 도와주는 역할만으로도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기존의 수업지도 경력이 많은 교사의 활용 폭이 커진다. 신규 선택과목 증가에 따른 신규 교사의 채용 여력도 생길 수 있다.
그간 준비하는 사이에 교육당국은 기존의 물, 화, 생, 지 네 과목에 더하여 통합과학이라는 이름의 교과서를 만들고, 선택과목으로 융합과학이라는 교재도 따로 만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통합과학이나 융합과학이나 기존 과목 내용을 모아 놓거나 새로운 토픽 하나를 뒤에 더 얹어 놓은 구조이다. 각 과목의 내용을 한 책에 모아 놓은 집합 수준이니 스스로 학습하기 쉬운 책이라고 말하기 매우 어렵다. 그 융합에서 창의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 같다.
창의성은 ‘왜?’에서 나온다. 스스로 읽으면서 ‘거꾸로 생각하기’ 훈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너무 아쉽다. 왜 그 밥에 그 나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교과서 집필자 그룹의 교육배경이 다양하지 못해서 그럴까? 아마도 집필자들의 시야가 과거의 익숙함에 젖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해가 뜨고 지는 것에 익숙해지면 지동설의 발상이 어렵다.
창의성을 키울 융합 교육은 ‘자연과 인간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의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우리는 어디서 온 누구인가?’ 그런 질문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철학이나 종교에서 답을 기대했다. 이제는 그 답을 과학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천체 물리학이 우주의 기원을 밝혀 주었다. 빅뱅으로 만들어진 수소가 별이 되었고, 그런 별 중 어느 하나가 만들어질 때 지구라는 덤까지 함께 만들어졌다.
지구는 생명 탄생에 유리한 환경과 생명 친화적 원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생명이 탄생했다. 지구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생명은 지구라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았고, 다윈은 그것을 진화라고 불렀다.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에서 인간 같은 대형 고등지능 동물이 태어난 것은 정말 행운의 기적 같은 일이다. 그 생명의 꽃은 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문화를 쌓아 올려 이제는 신의 경지를 넘보게 되었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이 드리운 그림자는 결국 인간의 지속가능성의 문제까지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바로 ‘인간 기원사’이다. 그것은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뇌신경과학, 그리고 인류학까지 아우르는 과학의 융합은 물론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까지 다루는 내용이 될 것이다. 이런 교과서로 융합교육을 시켜 보면 어떨까?
필자소개
송만호
서울대 철학과 졸. 유미특허법인 대표변리사. 유미과학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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