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에 하교하는 아이들을 배웅하러 나갔다가 담당 학생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평소에는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쑥스러워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하시는 분인데, 그날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절실해 보였다. 아이가 운동장에서 노는 사이에 어머니와 교문 앞에서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일본으로 유학을 와서 대학원까지 다녔는데, 집에서 애들 키우고 살림만 하다 보니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할 줄 아는지 잊었다면서 선생님같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고 글썽거렸다. 나는 한국인 모임이나 아니면 전공 관련된 강연회나 사람들을 만나보는지 물었으나, 어떤식으로 시작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고립된 생활에 자신의 자존감은 바닥이 되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는 거밖에 없다며 호소했다.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남편들과 아이들만 바라보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한국 여성들이 많다. 특히 가정을 위한 일이라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활을 하게 된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떠할까. 외국의 학교와 유치원이 그들의 세상 전부가 되어버려 한정된 사회활동에서 자신감을 잃고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것은 동포와 단절되기 쉬운 외국에서는 잦은 일이 되어 버릴 수 밖에 없다.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는 같은 엄마로서 학부모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러한 문제점을 통감한다.
필자가 일본에 있는 국제결혼가정의 이중언어교육에 관해서 연구조사를 하고 있었을 때, 일본 공립학교를 다니면서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아이의 가정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중 두 가지가 어머니의 외국어 학습 경험과 사회적 활동의 참가였다. 두 언어는 물론 자존감도 높아 늘 밝고 학교생활도 잘 하는 한 아이의 어머니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결혼 후 일본에 와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친구도 없었고 고립된 상태여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어를 전공하였기에 경험을 살려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땄다. 그러자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고 일본지역봉사활동과 같은 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가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곁에서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게 되었다. 어머니의 적극적인 사회적 활동은 아이들이 자신감을 느끼고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해 준 셈이다. 물론 어머니의 외국어 학습경험과 성격이 주요인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의 협조가 없었다면 지속적인 활동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일단 교회부터 가라고. 그리고 같은 한국엄마를 발견하여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 그 엄마의 경험과 입소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영사관과 민단, 학교 등 한국인단체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무작정 전화하여 마음 편하게 찾아가 묻기도 힘들다. 그나마 SNS를 통하여 정보를 주고받는 방법은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외국인 출생 수가 중국과 필리핀, 브라질에 이어 한국(조선국적포함-655명)이 4번째로 높다 (厚生労働省2020『人口動態統計年報』). 이번 통계에는 부모가 둘 다 외국적인 경우의 수만 나타냈으며, 일본과 한국의 국제결혼가정의 출생 수를 포함한다면 더욱더 많은 아이가 한국인 부모에서 양육된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많은 것들을 학교와 사회에 가지고 나온다. 이러한 것들은 중요한 문화적 자원과, 언어적 자원 그리고 지적 자원이 된다. 아이들이 일본 사회에서도 활약할 수 있도록 엄마가 물꼬를 터 주어야하며 그 어머니들에게는 처음의 문턱을 넘게 해줄 수 있는 동포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하다.
-글쓴이-
교사 백수정은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이고 일본 오사카금강인터내셔널소중고등학교 정교사. 민주평통청년자문위원,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옥타뉴스팀장을 겸하고 있으며 오사카대학 박사전기 과정 후 교토대학에서 학교운영디렉터 어드밴스 등 다양한 교육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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