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원’은 유아동 용품을 R&D하여 제조하고, 무역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현재 CMO로 활동하고 있는 양승택 키즈원 이사를 만나보았다. 15년 전 20대 청년 창업가로 시작해 현재 법인으로 전환된 키즈원과 드림메이커 협동조합 이사장, 흥사단 부설 사단법인 도산아카데미의 상임이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승택 이사에게 기업 비전과 성공 비결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양승택 이사와의 일문일답.
–㈜키즈원은 어떤 회사인가?
키즈원은 급변하는 시장환경을 잘 활용해 현재 B2C(이커머스/SNS) 시장을 통해 고객과 직접 소통하고 활동하고 있는 기업이다. 사업 초창기부터 육아를 하는 부모들의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하여 제품개발을 해 직접 시장에 진출했다. 이러한 생각을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의 아들을 양육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공감했고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키즈원의 제품은 생활속 아이디어를 적극 도입한 제품이다. 이용하는 부모들의 만족과 입소문에 힘입어 사업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시장변화(트렌드)에 어떻게 대응을 해왔나?
변화무쌍한 산업의 핵심가치를 분석해 왔다. 2006년 초기때는 저출산 영향으로 ‘VIB’ 1베이비 10포켓 현상에 과시형 큰 유모차(스토케 등등) 시장이 판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형에 맞지 않아 작은 유모차를 재구매하는 패턴을 분석했고, 키즈원은 인기있는 캐릭터(토마스와친구들)를 결합한 국내 최초 캐릭터 휴대용 유모차를 생산했다. 이와 더불어 별도 시트를 상품화해유모차의 시트를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가의 유모차를 구입해야 하는 부모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는데 현장에서 매우 만족했다. 또한 4계절 기후를 고려해 유모차 레인커버, 방한용 아이템을 개발하여 고객의 욕구에 적중한 사례를 만들었다.
당시 유아용품은 백화점, 로컬 직영점(아가방, 해피랜드 등)에서 구매해야만 했다.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던 점을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이 미국의 월마트 사례였다. 코스트코와 온라인판매 등으로 중간 유통단계를 줄여 고객에게 가성비 있는 제품을 제공했던 월마트 사례를 키즈원경영에 도입했다.

–15년간 사업을 하며 위기와 어려움은 없었나?
글로벌금융위기, 신종인플루엔자, 중국수출규제 등 많은 일이 있었다. 사업 초기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중국에서 생산해 오던 유모차가 달러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생산원가가 급격히 올라오게 되면서 수입에 의존하던 유모차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 이후 2010년 국내 생산설비로 대체했고 지금의 식탁/욕실 품목으로 전환해 소품종다량생산 체재를 구축했다. 주요품목이 없던 2010년까지는 사업 운영을 위해 많은 에피소드와 각구성원들의 다양한 활동과 노력이 있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당시, 유통관리사 경험을 바탕으로 땡처리(재고품 급히 저가판매) 시장에 진입했다. 다양한 품목 중에 불을 점화하면 멜로디와 촛불이 켜지는 이벤트촛불을 유통했었다. 레스토랑과 잡화상 등 다양한 곳에 납품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한번은 서울 노원에 큰 웨딩홀에서 샘플을 가동하다가 불량상품이 큰 불을 일으켜 온몸으로 불을 끈 적도 있었다.
또 2009년 때는 돈이 없어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늘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활동을 하였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양복에 큰 박스를 들고 다니던 필자에게 잡상인이라며 승차거부도 받았던 해프닝도 많았다. 당시에는 아동 캐릭터 스티커, 숟가락, 샌들 등 많은 아동용품 취급을 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2010년 모든 자본을 투자해 사이즈 조절이 되는 기능성 플라스틱 팩홀더를 생산했는데 어린 아이들이 우유나 두유를 먹을 때 악력 조절을 못해 흘리는 것을 보고 착안한 제품이다. 타겟 역시 세분화된 시장조사로 판로를 개척했기에 빠른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시장점유률을 높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유아(6개월~3세 이하)와 아동은 다른 시장이었는데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고 같은 접근 방식으로 마케팅과 영업을 한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필리핀 속담에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변명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성공을 위해 다시 시작했고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분유/우유를 판매하는 유업대리점을찾게 됐다. 유종섭 사장의 ‘㈜아기와나’였다. 유종 사장을 만나며 팩홀더는 날개가 돋친 듯 팔려 월만개씩의 개런티를 받았다. 당시 나의 허심탄회한 사정을 듣고 공감해준 유종섭 사장 덕분에 한단계 전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었다.
키즈원은 팩홀더의 학습사례로 STP(세분화/타켓/포지셔닝)전략의 제품을 잇따라 출시했고 치즈컷팅케이스, 이유식용기 등 출시되는 제품들은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육아 필수품목이 되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조치로 한국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이어졌다. 결국 롯데마트가철수하며 160개 이상 점포에 입점 돼 있던 키즈원 매출도 늘어나지 못하고 현재까지 고착화됐다.
–앞으로 계획은?
키즈원은 시장흐름에서 가장 중점이 된 이커머스에 중점을 두고 운영할 방침이다. 생산자와 고객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이커머스 시장은 나에게 큰 매력이었고 급변화된 펜데믹 상황에서도 물류산업 비중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이며 원동력이 됐다. 그동안 외적 요소에 더 성장할 기회를 놓쳤던사례를 반면교사 삼고 수출 확대에 인프라 구축과 배움에 힘쓰고 준비할 것이다.
‘훌륭한 지성인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재평가한다.’(C. W. Mills)
앞으로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그동안 경험과 지식으로 더 멀리 보고 행동에 옮기며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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