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또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 정부가 5월 31일까지 답변을 요구한 수출규제 입장에 대해 결국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데드라인을 넘겼다. 의도적 ‘무시전략’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업목적 방문에 대해 제한적으로 입국금지를 완화해달라는 한국의 요청에도 무응답이다. 한국 내 코로나19가 진정된 5월 중순엔 여타 111개국과 함께 묶어 비자중단 및 입국금지 조치를 한 달 연장했다. 향후에도 한국에 대한 차별적인 대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양국의 갈등국면은 지속될 전망이다.
■강한 청와대, 반격태세
한국 정부는 반격에 들어갈 태세다. 현재 한국 청와대나 일본 총리관저 모두 강경하다.
복수의 소식통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시한이니 답할 필요가 없다”는 게 관저 고위급들의 발언이라고 전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일본에 답변 시한을 요구한 건 산업부이나, 실질적으로는 청와대의 강경한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정부의 외교정책에 정통한 한 인사는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정상 차원에서 관계를 개선할 의지와 동기가 없어 보인다”며 “악화되는 방향으로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당장은 아니겠으나, WTO 제소 상황을 보다가 오는 8월 도래하는 지소미아 재연장 결정 시점에 지난해 11월 조건부로 재연장한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다시 꺼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그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대량살상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는 물자에 대한 수출 허가제인 ‘캐치올 규제’ 강화를 위해 대외무역법을 개정(3월)했으며, 산업부 내 무역안보 전담조직을 ‘과’에서 ‘국’으로 확대개편하고 인력도 확충했다. 모두 일본의 지적사항들이다. 한국이 속전속결로 이를 해소하자 일본의 답변이 궁색해지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 관계자는 요미우리신문에 “(수출관리에 대해) 한국이 확실히 진행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수출관리가 실제로 실행되는지, 효과적인지 확인하겠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표면적으로는 수출규제와 징용문제가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징용 문제 해결 없이는 수출규제도 해결이 어렵다는 게 일본 정부의 속내”라고 전했다.
■지지율 급락 아베, 강경 일변도 전망
한 •일 정상 간 지지율 역전 상황이 향후 양국관계의 주요 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60%까지 치솟았던 아베 총리는 20%대로, 40%대 초반이었던 문 대통령은 60%로 반등했다. 상황이 바뀐 아베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반한 카드를 다시 꺼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정치적 타협은 아베 정권이 강할 때나 가능한 것”이라며 “정권의 힘이 약해지면 한국과 타협의 여지가 사라지고, 여론의 분위기에 편승해 강경책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수출관리)를 철회한다면 아베 정부로선 그럴 만한 명분이 손에 쥐어져야 할 것”이라며 “명분 없이 완화 조치를 취한다면 아베 총리가 자민당 우파로부터 되레 공격받을 재료가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아베 내각 지지율 하락으로 자민당과 아베 총리 간 역학관계의 변화도 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선 지지율이 급락한 아베 총리가 반한 여론에 재차 불을 지피거나 한국 때리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신경호 고쿠시칸대 교수는 “코로나라는 국가적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고자 하는 습성이 발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상 차원의 타협이 한층 어려워진 가운데 기존에 양국 간 파이프라인(소통채널)으로 여겨진 이낙연 전 총리나 문희상 전 의장 등의 역할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더구나 최근엔 반한과 반일 여론이 정책결정 과정의 주요 변수로 부상, 양국 정부 내 대화파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저작권자(C)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