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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체결부터 종료까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89년 노태우 정부 당시 체결 시도가 있었지만 진전 없이 유야무야됐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다시 체결 논의에 불이 붙었다. 2010년 10월, 일본 외무상이 지소미아 체결을 제안했고 우리 정부는 일본과 물밑 논의로 지소미아 체결을 진행했다. 이어 2012년 6월 국무회의에서는 즉석 안건으로 상정했는데, 지소미아를 비공개 처리하면서 ‘밀실 추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난 여론은 거세졌고, 정부는 결국 서명 직전에 체결을 연기하게 된다.

지소미아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북한이 고강도 도발에 박차를 가하던 2016년이었다.

당시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20여 발의 미사일 도발과 함께 4차·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0월 2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협정 체결 논의를 재개하기로 하고, 27일 만인 11월 23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지소미아에 서명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가 빗발치던 시기였다. 이에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 각계에서는 ‘지소미아 졸속체결’이라는 비난을 쏟아부었다.

우여곡절 끝에 체결된 지소미아는 체결일을 기준으로 1년씩 연장돼왔다. 기한 만료 90일 전에 양국 중 한 쪽이라도 종료 의사를 통보하면 종료되는 방식으로, 지난 2017년과 2018년 각각 1년씩 연장됐다.

한·일 양국은 지소미아를 통해 북핵·미사일과 관련한 2급 이하 군사비밀 공유를 해왔고, 체결 이후 모두 30건의 군사 정보를 공유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지소미아는 체결 3년 만에 종료될 운명에 처해졌다.

8월 2일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 징용 판결 보복의 일환으로, 지난 8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했다. 이에 우리 정부도 같은 달 22일 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일 양국이 처음 맺은 군사협정이 오는 23일 0시를 기점으로 종료되는 것이다.

군사적 효용을 차치하고도 지소미아는 미국 국무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일이 동참한다는 개념으로 한·미·일 3각 협력의 의미를 갖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조하면서 한미동맹을 ‘린치핀'(linchpin·핵심축), 미·일 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에 비유해왔다.

결국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과 러시아에 대응한다는 개념으로 지소미아를 통해 한·일을 묶고, 나아가 이를 통해 한·미·일 3각공조를 공고히 하려 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8월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발표 이후, 노골적으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우려와 실망을 표하며 연장을 압박했다.

지난 15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SCM)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도 “지소미아 종료로 득 보는 건 북한과 중국”이라며 연장을 촉구했다. 이어 지소미아 종료를 일주일 앞두고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담(ADMM-Plus)에서 한·일 국방장관이 마주하며 극적 반전 상황이 연출될지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양 장관은 지소미아 관련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에 그쳤고 입장차만 확인하고 돌아섰다.

파이낸셜뉴스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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