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일대 고층 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도심의 재정비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종묘 경관 영향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국제도시로서의 기능 회복과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려면 세운4구역을 포함한 노후 지역의 재개발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세운상가 일대는 1960년대 개발된 이후 도시설비가 급격히 노후화됐다. 건축 구조물의 내진·내화 기준 미비, 비효율적 공간 활용, 저층 밀집 구조로 인한 안전 문제 등이 누적돼 왔다. 수십 년간 대수선이 제한된 지구단위계획 역시 노후화를 가속하면서 도시관리의 공백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화재와 안전사고 위험이 반복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서울시는 이 지역을 도심 산업·주거·문화 기능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지구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고층 개발안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세운4구역은 종로축과 을지로축을 연결하는 핵심 거점”이라며 “스카이라인 재편과 도심 보행축 확장이 이뤄져야 전체 도심 회복력이 강화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세운상가 일대는 도심부 한가운데 위치해 있지만 유효 용적률이 낮아 주변 지역에 비해 개발 잠재력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다.
종묘 경관 훼손 우려에 대해서는 법적 기준 내에서 조망 영향 검토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다. 시는 “직접 조망과 간접 조망을 모두 고려한 문화재 영향평가 절차가 적용되고 있다”며 “고층 구조물이 종묘의 진입로·제향 공간에 직접적인 시각적 침해를 주지 않도록 설계를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유산 보호 기준에 따라 반경 영향 범위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경제성 문제도 개발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제기된다. 세운상가 일대는 도심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영세 제조업 중심 구조가 고착되면서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정보통신·정밀 기계 등 첨단 도시산업 기반이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저층 공업 구조만으로는 산업 생태계 유지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재정비를 통해 업무·연구·창업 기능을 유입해야 지역 경쟁력이 회복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젊은 층과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문화 공간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개발 추진의 명분으로 꼽힌다. 기존 골목 기반의 매력은 보존하되, 도시 차원의 새로운 수요를 받을 수 있는 공간 확충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노후한 공업지와 보행 단절을 그대로 둘 경우 서울 도심 전체의 쇠퇴가 불가피하다”며 “적정 규모의 고층 개발은 오히려 종묘와 주변 지역 관리 역량을 높이고 도심 환경을 정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평가한다.
서울시는 내년 착공을 목표로 하지만, 정부·지자체·문화재기관의 협의 절차가 남아 있어 최종 일정은 유동적이다. 다만 도심 중심축의 개발이 수십 년간 지연된 만큼, 이번 재정비 논의를 계기로 도시정책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발과 보존은 대립이 아니라 조율의 문제”라며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도심 재정비가 진행된다면 서울의 장기 경쟁력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