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읽는 글로벌 지리’ 주제 특강
한국 식품이 일본 시장에 뿌리내린 과정을 주제로 한 특별 강연이 10월 14일 도쿄 와세다대학교에서 열렸다. 오후 5시부터 6시 40분까지 진행된 이번 강연의 연사는 동원재팬 하기석 법인장이었다.

강연 제목은 ‘맛으로 읽는 글로벌 지리’로, 한일 식품 교류의 실제 사례를 지리학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문화적 차이를 넘어선 브랜드 전략과 현장 경험을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했다.

하기석 법인장(56)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 동원산업에 입사해 해외사업을 이끌어왔다. 2010년 일본 현지법인 ‘동원재팬’을 설립해 일본 시장 개척의 선봉에 섰으며, 현재는 동일본한국수입유통협의회 회장과 한국김치수입협의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기업의 생존은 위기 속에서도 현장에서 배우고, 소비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강연은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먼저 ‘동원그룹의 50년과 글로벌 확장’에서는 참치캔 산업에서 출발한 동원그룹이 식품·금융·물류로 확장해온 과정을 소개했다. 이어 ‘한국 식품의 일본 정착기’에서는 1960년대 재일동포 사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한식의 일본 진출이 1990년대 한류 확산과 결합하며 대중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은 과정을 분석했다. 그는 “K-POP과 드라마가 열어준 한류의 길 위에 한국 음식은 생활문화로 자리 잡았다”며 “최근의 K-푸드는 일본 젊은 세대의 트렌드와 결합해 ‘맛의 한류’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기석 법인장은 현지화 전략의 구체적 사례로 일본 시장에 맞춰 개발한 ‘동원 라볶이’를 소개했다. 제품의 디자인과 매운맛 강도를 조정한 과정을 공개하며 “문화적 상징을 활용한 식품 마케팅은 단순한 판매 전략이 아니라 문화 교류의 확장”이라고 강조했다. 또 방탄소년단 진(JIN)을 모델로 기용한 ‘TOP STAR 마케팅’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그는 또한 실패의 경험도 숨기지 않았다. 2006년 롯데백화점의 ‘홋카이도 물산전’에서 재고 손실을 겪으며 현지 수요 예측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밝히며 “실패가 오히려 분석력과 기획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어 호주산 원료의 원산지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국내로 옮겨 품질 신뢰를 회복한 일, 장기 전략으로 일본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은 ‘고추참치’와 ‘전복죽’ 사례도 공유했다.
후반부에서는 ‘맛을 통한 지리적 매력’과 ‘한일 식품 교류의 가능성’이 다뤄졌다. 그는 전통주 막걸리와 일본 사케를 지도 형태로 비교하며 기후·수질·발효 방식의 차이가 지역 브랜드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전주 비빔밥, 순창 고추장, 춘천 닭갈비처럼 지역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것이 지리의 힘”이라고 했다.
특히 마루하니치로와 공동 개발한 ‘한일 고추참치 제품’이 처음 공개됐다. 이 제품은 2025년 9월 일본 전국 5000여 매장에서 출시됐으며,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양국 동시 판매되고 있다. 하기석 법인장은 “서로 다른 맛의 문화가 협력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든 사례”라며 “음식이 국경을 넘을 때 기업도 사람도 성장한다”고 말했다.

하법인장은 1977년부터 이어온 동원육영재단의 장학사업, 어린이 도서기부, 축구대회 후원 등 사회공헌 활동도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K-POP 댄스대회 후원, 고교생 대상 김밥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한일 청소년 문화교류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연을 준비한 와세다대 송원서 교수는 “동원재팬의 사례는 문화와 경제가 만나는 현장의 교과서”라며 “학생들이 한국과 일본의 시장·문화 차이를 실제 기업 사례를 통해 이해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이번 특강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기업이 문화외교의 주체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자리로 평가된다. 하기석 법인장은 “세계 어느 시장이든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기업만이 오래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유창한 일어와 유머섞인 하법인장의 강연에 와세다 대학생들의 열띤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