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은 일반적으로 ‘의사(義士)’라 불린다. 그러나 그가 재판 과정에서 스스로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 밝힌 사실에 비춰볼 때, ‘장군’이라는 호칭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의사’라는 호칭은 개인의 희생과 의로운 결단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안중근의 종교적 신념, 사상가·교육자로서의 면모는 부각되지만, 항일 무장 투쟁의 국가적·군사적 성격은 상대적으로 흐려질 수 있다. 반면 ‘장군’이라는 호칭은 그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조직적 무장 저항을 이끈 지휘관임을 보여준다. 안중근이 스스로 ‘참모중장’이라 칭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국제적 맥락에서 그의 활동을 설명할 때 ‘장군’이라는 호칭은 항일 독립투쟁이 개인적 의거가 아니라 군사적 저항이었다는 점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다만 반대의 시각도 존재한다. ‘장군’ 호칭은 그의 다양한 정체성을 군인으로만 환원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안중근은 군인이자 동시에 종교인, 사상가, 교육자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규군이 아닌 의병 조직의 지휘자를 ‘장군’이라 부르는 데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결국 안중근을 ‘의사’라 부를지, ‘장군’이라 부를지는 단순한 명칭 문제를 넘어, 그의 공적을 어떤 맥락에서 기억하고 기릴 것인가와 직결된다. ‘의사’는 개인의 희생과 신념을, ‘장군’은 국가적 투쟁과 지도자의 위상을 강조한다. 시대적 관점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어느 쪽이든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안중근의 삶과 투쟁을 올바르게 기억하기 위해서는 두 호칭이 지닌 역사적·상징적 의미를 함께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