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한 조치가 15일부터 공식 발효된다. 이로써 한국은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과 함께 미국 내 핵심 과학기술 연구시설 출입과 연구협력에서 까다로운 제약을 받는 국가로 규정된다. 정부는 범부처 차원에서 미국과의 협의에 나섰지만, 끝내 지정 철회 또는 유예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은 최근 미국 에너지부 크리스 라이트 장관과 직접 면담을 가졌으나 민감국가 지정의 철회나 예외 적용 등의 성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역시 대응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1월에 발표된 민감국가 지정 사실을 3월이 되어서야 인지했다는 점이 알려지며 ‘외교 참사’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민감국가 지정은 미국 연방 에너지법에 근거해 적용되며, 해당 국가 국민이나 대리인은 미국의 국가안보 관련 연구소 출입 시 사전 신원조회 및 별도 승인 절차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기존보다 한층 강화된 장벽으로, 한미 과학기술 및 국방 관련 협력에도 일정 수준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NNSA)이 운영하는 ‘예측과학 학술 연계 프로그램(PSAAP)’ 4기 모집 공고문에는 “자금은 미국 시민이거나 비민감국가 출신의 비시민에게만 제공된다”고 명시돼 있어, 향후 한국 국적 연구자들은 연구비 수혜에서도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은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관련 질의에 대해 “에너지부 내부 절차가 필요해 실제 효력 발효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면서도 발효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궁색한 해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의 핵심 축으로 불리는 과학기술 협력 분야에서 한국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원자력, 국방 기술 등 전략산업에서의 협업에 제약이 생기면 중장기적으로 경제 및 안보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민감국가 지정 철회를 위한 정부의 후속 외교 노력과 함께, 국내 연구 생태계의 독자적 역량 강화 방안도 시급히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