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수교 60주년을 넘어 양국 간 식문화와 정서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현장에서 뛰는 인물이 있다. 일본 내에서 ‘엄마 손맛’으로 불리는 ‘맘스김치’를 앞세워 한국 김치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는 이광석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한일 양국을 오가며 기업가이자 지역 봉사자, 때로는 재일동포사회의 오피니언리더로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충암고 졸업후, 대북사업까지 독특한 이력과 폭넓은 활동을 바탕으로 일본 내 교민 사회는 물론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서울 향우회인 경인회 창설부터 일본 식품업계 속 다양한 활동, 그리고 ‘하하 김치’ 수입까지, 이 대표의 다채로운 여정을 들어봤다.
Q1. 경인회 대표를 맡게 된 계기와 조직을 만든 배경은 무엇인가?
A1.탄생배경은 소박했습니다.
21년 12월 어느 단체의 망년회에서 한자리에 앉은 4명이 모두 서울 출신이었습니다.
서울,경기 빼고 타지역은 모두 향우회가 존재하는데, 우리만 없다. 라는 이유로 우리도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모임이 현 서울경인회 입니다. 타 향우회와 달리 SNS로 회원을 모으고, 주변인들에게 소개하여 현재 회원이 117명 입니다. 적극참여하는 회원이 이제 30명정도로 아직은 규모가 작습니다.
서울 향우회로 출발했지만, 일본에 향우회가 없는 경인지역 분들도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습니다.
서울경인회는 타 향우회처럼 체계화 되어 있지 않고, 친목모임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외국생활의 외로움이나 인맥부족을 메꿔주는 대부분의 모임이 그렇듯 그렇게 시작하는 중입니다.
안팎으로 모임의 형식과 내실을 기하자 의견이 나오고 있어. 이에 부응하려는 생각도 있습니다.

Q2. 한국의 중견 면사장 일본 법인장 시절의 경험은 어땠는가?
A2. 당시 면사랑지사의 주품목은 냉면이었고, 냉면은 당시 한류 붐 성장에 힘입은 대표적 제품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에서 법인장을 맡으면서 기본 시장은 있으나 한정된 교민시장은 뒤로 두고, 일본 미쓰비시등 대형벤더 및 이도요카도,이온 같은 대형유통업체에 영업을 집중 했었습니다.
맨땅에서 시작하여 3년만에 흑자로 만들고 당시에 중소기업이 입점하기 어려웠던 일본코스트코에 납품을 성공하기도 하였습니다.
거래처 관리, 품질 기준 대응 등 실무를 체계적으로 배웠고, 무엇보다도 현지의 소비자 눈높이를 체감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식품사업을 시작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Q3.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 내 농식품 산업에 대한 견해는 무엇이었는가?
A3. 일본 농식품 시장은 고품질과 안전성을 핵심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한국의 업체들은 그 까다로운 일본유통의 기준을 잘 맞추지 못 한 채, 많이 팔 욕심만 가지고 진출 합니다. 일본소비자들의 소비방식과 니즈를 정확히 꿰 뚫지 못한채 마케팅을 하면 수요는 한정적이고 붐업상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따리상으로 시작한 일본의 한국식품시장은 이제 몇조단위로 성장했습니다.
한일 수교 60주년은 그러한 일본 시장에 한국 식품의 진입 가능성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저는 전통 발효식품, 특히 김치의 문화적 가치와 건강성에 주목했고, 그때부터 일본 시장 내 ‘한국 김치의 위상’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Q4. 맘스김치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4. 코로나 이전부터 김치는 제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맘스김치’라는 이름에는 ‘엄마가 만든 정성스러운 음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김치에 대해 관심은 많지만 진짜 ‘집김치’는 접할 기회가 적었죠. 그런 공백을 채워보고자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특히 한인타운인 신오쿠보 300여식당이 거의 중국김치를 사용하는데 이것을 한국김치로 바꿔보고 시작했습니다.
Q5. 코로나19 시기에 직접 배송을 하며 교민들과의 추억이 있다면?
A5. 이동의 제한과 당시 회사의 물류체계가 안되어 정상적인 배송이 어려웠던 시절, 주문이 들어오면 제가 직접 배달을 했습니다. 동경 및 인근지역까지 직접 돌면서 교민 가정의 초인종을 눌렀고, 그 짧은 만남 속에 눈물과 웃음이 있었습니다. 김치 한 통으로 ‘고향의 맛’을 느끼는 분들의 반응은 지금도 제게 큰 원동력입니다.
제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은 맘스김치를 하기전과 그후로 구분할 정도입니다.
Q6. 젊은 시절 북한 관련 대북 사업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고, 북한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A6. 1995년 북한산 제품 구매 의뢰를 받고 북한영사관이 있는 러시아나호드카 란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사는 지인에게 북한영사를 소개받고 약 2년간 그들과 상업을 도모하고 교류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 북한의 비참한 상황을 그들을 통하여 알 수 있었고 지독하게 나쁜 정권 때문에 고통을 받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북한동포들의 삶을 직접보고 들었고, 이때부터 북한의 인권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북한문제는 결국 우리가 풀어야 할 숙명적 과제이며 전쟁을 종식하고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 최고이다 라고 생각하며, 준비 없는 통일은 반대하며 종전과 경협 등 하나하나 시간을 가지고 풀어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7.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A7. 충암고 동문으로서 윤 대통령이 당선 될 때 기뻐해야 할 많은 동문 중 한 명 이었지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우려는 현실화 되었고 실제 이제 탄핵도 되었습니다.
정치에 관련하여 그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지만, 이제는 관심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불법계엄은 대한국민이 막았고 앞으로도 훌륭한 정치선진국을 만들 것 이라 생각합니다.
향후 대한민국은 국민이 정치하는 참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Q8. SNS를 통해 일본 내 맘스김치를 홍보하게 된 전략은 무엇인가?
A8. 전통적인 홍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SNS는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플랫폼이자, 브랜드의 감성을 전달하는 도구였습니다. 레시피 소개, 김치 효능, 고객 리뷰 등을 통해 김치를 단순한 반찬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음식’으로 포지셔닝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김치는 일본에서 가격에 맞추는 저품질 김치가 대세인데 맘스푸드는 고급김치를 지향하여 전라도에서 직수입 합니다. 앞으로 이부분을 SNS에서 적극 홍보할 예정입니다.
Q9. 중국의 업무용 김치 ‘하하’를 일본에 수입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A9. 외식업체나 대형 급식업체를 대상으로 한 ‘업무용 김치’ 수요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런데 한국김치는 이제 일본시장 진출에 악재가 많아졌습니다. 일본에서 생ㄱ\산하는 기무치도 마찬가지구요. 그자리를 대체 할 상품입니다.‘하하 김치’는 HACCP 인증을 받았고, 중국현대자동차에도 납품하고 있습니다. 대량생산용 김치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췄습니다.
Q10.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A10. 김치를 넘어 다양한 한식 브랜드를 일본과 아시아 시장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또한, 맘스김치를 통해 한국 식문화에 담긴 정서와 스토리를 세계인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교민 사회의 플랫폼 역할도 지속해서 강화할 예정입니다. 일본 내 한식에 대한 이해와 수요가 높아지는 지금, 저는 단순한 식품사업가를 넘어 문화 전달자로서의 소명을 갖고 앞으로도 현장에서 뛰겠습니다. 한일 간 다리 역할을 하며, 음식으로 사람을 잇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