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장사는 동업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LG 구씨 가문과 GS 허씨 가문은 이 격언을 무색하게 만들며 무려 58년 동안 동업 관계를 유지해왔다. 두 거대 재벌이 어떻게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큰 갈등 없이 동업자로 함께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독특한 동업의 시작
이 동업의 뿌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씨 가문은 먼저 지수면에 터를 잡았고, 그 이후 구씨 가문도 지수면으로 이사를 오면서 두 가문은 이웃으로 지내게 되었다. LG 창업주 구인회(1907-1969)는 13세가 되던 해(1920년) 이웃에 살던 허만식의 딸 허을수와 혼인하며 두 집안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후 구인회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구인회상점’을 열어 잡화부터 비단, 광목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허씨 가문의 투자와 신뢰
구인회의 장사 수완을 알아본 허만정(1897-1952)은 구인회에게 거액의 돈을 투자하며 자신의 아들 허준구(1923-2002)에게 구인회에게서 장사를 배우라고 지시했다. 허씨 가문의 투자를 계기로 두 가문의 동업 관계가 시작되었다. 구씨는 사업 확장과 공장 건설 등 바깥일을 담당하고, 허씨 가문은 재무와 영업을 책임지며 내부적인 업무를 맡았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두 집안이 갈등 없이 동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사업 제국의 확장
구인회는 1947년 ‘락희화학 공업사’를 설립하여 국내 최초의 치약을 개발해 출시하는 등 화학 제품 시장을 선도했다. 구씨와 허씨의 동업 관계는 이처럼 사업 확장과 함께 더욱 탄탄해졌다.
그러나 사업 과정에서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허신구 상무가 개발한 가루세제 ‘하이타이’는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구씨와 허씨는 세탁기의 보급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1969년 금성 ‘백조세탁기’를 출시하며 세제 판매에도 불을 지폈다.
동업과 타협의 길
두 집안의 동업 관계는 사업을 넘어 여러 분야로 확장되었다. 구인회는 TV 수상기 개발을 앞두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동업 제안을 수락하여 ‘동양 TV’와 라디오 서울을 설립했다. 그러나 방송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내부 갈등으로 구인회는 방송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1983년 LG 트윈 빌딩이 착공될 당시에도 구씨와 허씨의 동업 정신은 이어졌다. 이 건물의 30층에는 구자경 회장과 허창수 회장의 방이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2004년, 두 가문은 각자의 사업이 커지고 자손들이 늘어남에 따라 동업 관계를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보유한 지분에 따라 65대 35의 비율로 사업을 분리하였고, 구씨는 LG 전자를, 허씨는 GS칼텍스, GS홈쇼핑 등을 인수했다.
그리고 양측은 동일 업종에서 경쟁하지 않겠다는 신사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고려아연 사태를 돌아보며
최근의 고려아연 사태를 되돌아보면, LG와 GS의 동업 역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철저한 역할 분담과 상호 신뢰, 그리고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두 집안의 파트너십은 동업의 모범 사례로 남아있다.
LG와 GS의 이야기는 상호 존중과 명확한 역할 분담이야말로 오랜 동업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