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형법 제126조에 명시된 피의사실공표죄는 오랫동안 사문화된 법률로 인식되어 왔다. 수사기관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할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법이 적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최근에는 이 법을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적인 법률로, 특히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 중 하나다.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무분별하게 공표할 경우, 피의자가 무죄로 판명되더라도 사회적 낙인이 찍히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오명을 쓰고 사회적 지탄을 받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이 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법은 사문화된 상태였다. 1995년부터 2021년까지 접수된 764건의 피의사실공표 고소·고발 중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았다는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공표한 당사자가 직접 수사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이 이 문제를 내부에서 처리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 기소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피의사실공표를 막기 위한 강력한 조치가 시행되었다. 당시 법무부는 검찰의 비공개 브리핑을 지시하며 피의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강조하며 이를 다시 부활시켰다. 법무부는 전문공보관과 실무 차장검사가 사건 관련 브리핑을 맡는 방식으로 피의사실 공개를 허용하는 방침을 내세웠다.
특히 2023년 이선균 사망 사건 이후, 피의사실공표로 인한 인권 침해 문제가 다시 한번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2023년 12월에는 김승원 의원이 피의사실공표를 금지하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피의사실 공개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수사기관이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 법안 발의는 피의사실공표로 인한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정치적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을 ‘이재명 방탄법’으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오랜 시간 사문화된 채 방치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이 법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앞으로 피의사실공표금지법이 어떤 방향으로 논의될지,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인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