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는 사람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을 AI나 로봇이 대신 할 것으로 예측한다. 당장 몇 년 내 5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로봇이 대신할 것으로 내다보는 이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현재 직업의 50%가 사라질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최근 이러한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 관계자들의 고민이 크다. 세계 각국에서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미래 사회 대응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 도 2025년부터 초등학교부터 AI를 정규 교육과정에 도입하는 등 국가 차원 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AI 융합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를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단위 학교를 대상으로 ‘디지털 선도학교‘를 운영하면서 Al 역량을 키우고 있다.
동경한국학교 ‘도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디지털 선도학교‘로 지정받아 교사, 학생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역량강화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미래 사회에 대비한 당국의 몸부림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과 관련한 우선적 역량은 언어 능력이라고 전문가들을 입을 모은다. 특히 영어 능력은 어쩔 수 없 이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라고 평가한다. 이런 관점에서 국어, 영어, 일어 3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지도하는 본교의 언어 교육 프로그램은 미래를 내다본 선견지명의 혜안이었다. 특히 영어 이머전은 자랑해도 지나치지 않을 특징적인 교육 시스템이다.
‘동경한국학교‘는 재일동포 자녀들의 민족교육을 위해 선각자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 온 학교로 선진국에서는 유일하게 70년을 지켜온 재외 한국학교이다. 지금까지 설립 이념을 잃지 않으면서 여러 분야에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랑거리도 만들었다. 1964년 26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던 ‘동경한국학교‘가 2024년 70번째의 나이테를 그리며 만들어 낸 자랑거리 중 대표적인 것이 영어 이머전 교육이다.
동경한국학교 영어 이머전 프로그램은 여느 학교에서 모방해도 되는 범용 교육과정이 아니며, 따라 하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일반적 스시템도 아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고난 속에서 교직원들의 눈물과 땀으로 이룬 것이며 지금도 끊임없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교육과정이다.
이머전 교육(몰입교육)은 196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으로 영어권인 캐나다지만 프랑스어 환경에 빠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외국어 교육 방법인데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두었다. 1970년대 미국으로 전파되어 현재 100여 개가 넘는 학교에서 이머전 방법으로 외국어를 지도하고 있다 .
동경한국학교에서는 2000학년도까지 4, 5, 6학년 학생들에게 주당 2시간의 영어 교육만이 지도되고 있었다. 당시 국제 언어로서 영어 능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었지만 본교는 여기에 부합되는 대응이 힘들었다. 88올림픽 이후 본국에서 주재원들이 많이 파견되었지만 자녀들 대부분은 국제 학교를 선호했고 상대적으로 본교는 학생 모집을 고민하는 상황이었다. 지속적으로 교육 수요자들의 영어 교육에 대한 요청이 있었기에 학교는 해결책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이머전 교육이다.
영어 이머전 교육의 도입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0년 초에 TF를 꾸렸지만 경험있는 교직원도 없었고, 자료도 부족하여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2000년 11월 본국 이머전 교육 선진 학교 견학 및 일본 내 영어 이머전 실시 우수 학교도 방문하며 겨우 초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 2002년 2월에야 최종안이 마련되었고 관리 기관으로부터 사업이 승인되었다.
2002년 3월에야 원어민 교사 채용, 교육과정 편성, 교실 확보, 교구 준비 등의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4월부터 당장 시작해야 하는 사업인지라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기에 앞만 보고 달렸다. 그해 4월 1, 2학년을 대상으로 드디어 영어 이머전 교육이 시작되었다. 처음 계획은 상위 학년으로 확대할 계획이 없었다. 이유는, 영어 교육에만 너무 치중하다 보면 다른 과목의 학력 저하가 우려되었고, 설립 이념인 민족교육에까지 혼선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는 단위 학교에서 두 개의 교육과정이 함께 운영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본국 교육과정과의 충돌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3, 4, 5, 6학년에서는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집중교육 형태의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머전 교육에 대한 호응이 높아 수요자들의 확대 요구가 잇따르고 실제 학생들의 언어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어 상위 학년까지 확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머전 교육을 통해 영어뿐만 아니라 국어 능력이 동시에 향상되어 민족교육에도 도움이 된다는 결과와 우려와 달리 다른 과목의 학력도 향상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매년 1개 학년씩 확대하여 2006학년도는 6학년까지 영어 이머전 교육이 확대 되었다.
돌이켜보면, 본교 영어 이머전 교육은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딛고 오늘에 이르게 된교육 시스템이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변화하면서 진화되어 가는 교육과정이다. 교재는 북미 쪽의 원서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본국 교육과정과는 별도로 단위 학교에서 또 하나의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당시 본국의 지침에는 맞지 않아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일반 교과 수업이 아니라 영어 특별교육 프로그램으로 정리가 되었다. 따라서 수업료와 별도로 ‘영어 이머전 수업비‘를 징수한다.
학급 운영에 있어서는 한국인 교사(담임)과 원어민 교사(부담임)가 한 학급에 함께 배치된다. 초기에는 이머전 관련 시간이 총 9시간으로 일반 교과 시간 7시간, 영어 시간 2시간이다. 일반 교과는 수학 3시간, 슬기로운 생활 1시간, 즐거운 생활 3시간이고, 영어 시간 2시간은 영어의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를 지도하는 순수 영어 시간이다. 관련 교재는 북미 쪽의 원서를 그대로 활용했다. 운영 방법은 한 학급을 2개 그룹으로 나누어 교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이다. 1교시에 원어민 교사가 1그룹의 학생 20명이 영어 이머전 수업을 할 때, 2그룹 학생 20명은 한국인 담임이 한국 교육과정을 다루고 다음 시간에는 서로 교체한다.
영어 이머전 수업과 짝을 이루는 과목으로는 우선 국어 7시간을 배정했다. 이유는 재외 민족학교에서 국어 교육의 강화 없이는 영어 교육도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 40명으로 진행되던 국어 수업을 20명씩 소인수 로 나누어 진행함으로써 모국어 실력이 향상되어 결과적으로 영어뿐만 아니라 국어 교육도 강화되는 효과를 얻었다.
특징적으로 과학 시간은 이머전 과목에서 별도로 편성하였다. 3시간을 북미 쪽의 원서로 실험 중심의 과학 수업을 이머전으로 진행하고, 1시간은 담임이 한국 교과서를 이론 중심으로 가르친다. 이에 대해 처음에는 학력 저하라는 걱정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적극 지지하고 응원하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만큼 교육적 효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 교과는 이머전 시간과 본국 교육과정 시간을 각각 1시간씩 늘리고, 즐거운 생활과 슬기로운 생활도 1시간씩 늘려서 2002학년도에 9시간이던 이머전 시간을 주당 12시간으로 늘렸다. 그리고 3학년에서는 조금 다른 형태의 영어 이머전 수업을 시도했다. 체육과 미술에 각 2시간씩 4시간, 영어 통합 시간 7시간으로 11시간의 이머전 관련 시간을 확보하여 실시했다.
2004학년도부터는 4학년까지 영어 이머전 교육을 확대시키고 또 다른 변화를 시도 했다. 우선 1학년에서 연간 수업 시간을 1,025시간으로 편성했는데, 이는 본국의 배당 시간 기준인 830시간에 비해 거의 200시간을 초과한다. 1학년 외의 다른 학년에서도 비슷한 상황으로 본국보다 30%정도의 수업을 더 이수하고 있다. 본국에서는 1, 2학년의 경우 오후까지 수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본교는 재외 한국학교임과 동시에 일본의 각종학교로 인가되어 1, 2학년도 6교시까지 수업 진행이 가능하다.
현지 언어인 일본어 수업이 주당 4시간 배당되어 있는데 이도 국어와 마찬 가지로 이머전 수업과 짝을 지었다. 일어 시간에는 항상 20명씩의 소인수 분반 수업이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개별 지도가 가능하고 결과적으로 영어는 물론 국어, 일어 능력도 함께 향상되어 3개 언어를 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인해 학력 저하가 될 것으로 우려했던 것이 오히려 향상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6학년이 되어 영어 능력 시험 결과를 보면 평균적으로 일본의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영어 실력을 6학년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 뛰어난 아이들은 준2급을 획득하여 고등학교 2학년 수준까지 도달하는 학생도 다수 있다.
특징적인 이머전 수업 중의 하나는 1학년의 슬기로운 생활 교과로 배당된 3시간 중에 2시간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나머지 1시간은 일어로 수업한다는 것이다. 영어로 수업하는 2시간은 북미 쪽의 교육과정을, 일어로 이루어지는 1시간은 본국 교육 과정을 일어라는 언어를 이용하여 지도한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본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이머전 수업은 영어 이머전과 일어 이머전 그리고 과학, 수학, 슬기로운 생활 등 다양한 과목의 이머전 수업이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형태의 이머전 수업 효과를 점검하면서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연간 다양한 영어 관련 행사도 많다. 그 중 ‘영어의 날‘이 있는데 이날은 하루 동안 영어만 사용하는 날로 연간 4회 실시된다. 그 외 원어민 교사들이 주관하는 집회, 영어 말하기 대회, 영어 연극 대회, 영어 노래 발표 대회, 할로윈 데이, Peace day, Thanks giving day, Science fair 등이 있다. 그리고 영어 능력이 떨어져 수업에 지장을 받는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보충 지도가 이루어진다. 1학년 1시간, 2, 3학년 2시간, 4, 5, 6학년 3시간씩 원어민 교사가 방과 후에 별도의 보충 지도를 하고 있다. 반대로 영어 능력이 특별히 뛰어난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스페셜 영어반을 만들어 수월 교육을 돕기도 한다.
특별활동(CA) 시간에는 영어 드라마, 영어 게임, 골프, 영어 음악 등 영어 원어민 교사가 진행하는 부서를 만들어 지도하고 있다. 그리고 원서 10,000여 권이 확보되어 있는 영어 도서실이 국어 도서실과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영어 수업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다양한 형태로 도서관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이 1년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관심이 많은 작가 1명을 학생들이 투표로 선정하여 직접 학교로 초청하여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행사도 진행된다. 이는 학생들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며 많은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린다. 세계 유명 작가를 직접 만나는 시간은 학생들에게는 가슴 떨리는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는 5박 6일 동안 원어민 교사가 주관하는 영어 캠프가 진행된다. 캠프 전후로 20시간의 캠프 관련 준비 학습이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 학생들보다 보호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매년 1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캠프 기간에는 영어만 사용하게 되고 원어민 교사들이 주관하며 한국인 교사는 보조 역할만 하게 된다. 그리고 방학을 이용해서 영국으로 30일간의 어학연수도 희망자를 중심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처럼 ‘동경한국학교‘ 영어 이머전 교육 프로그램은 계속 다듬어지면서 진화하고 있는 교육과정이다. 지금도 많은 어려움과 부딪히며 연구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수정되고 있다.
영어 이머전 교육을 시작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국어 교육도 잘 안되는데 일어에 영어까지 가능하겠냐는 우려의 여론이 들끓었다. 언어는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며 세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면 생각하는 능력이 두 배 이상 확장된다는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와 같이 실제로 국어, 영어, 일어 3개 언어를 1학년부터 지도한 결과 고학년에서 유의미한 결과들을 얻었다. 국어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가 불가능한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국어가 전혀 안되는 학생이 40% 정도, 일본어가 전혀 안되는 학생이 40% 정도, 영어가 전혀 안되는 학생이 90% 정도인 신입생들이 6개월이 지나면 국어든 영어든 일어든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수준의 어학 능력이 된다.
그리고 6학년이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3개 언어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게 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영어 이머전 교육을 통해 모국어 능력이 향상되었고, 영어와 일어 수준까지 함께 올라가면서 다른 교과목의 성적도 덩달아 향상된 결과를 얻었다. 이는 분명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위에서 능력있는 국제인으로 키워가는 미래 민족교육의 방향에도 부합되는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처음부터 각본에 의해 짜여진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 속에서 난관을 이겨내며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이므로 이 사업을 보전하기 위한 탄탄한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안목있는 관리자와 담당자가 절실하며 우수한 원어민 교사가 필요하고, 상급학교와의 연계도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단체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학교 관계자와 수요자들은 물론 외부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고 머리를 맞대어 힘을 모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리하면 동경한국학교 영어 이머전 교육은 학교의 생존 전략으로 출발한 조그만 사업이었다. 그러나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변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수요자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지금은 어디에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을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노하우가 쌓였고 기본적인 형태도 갖추어졌으며 민족교육 차원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을 더욱 잘 다듬고 발전시켜 동경한국학교가 민족교육의 바탕 위에 국제학교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일본의 민족학교로 우뚝 서기를 기대하며, 지금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발전시켜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