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한국상공회의소 김순차 회장 “재일동포 위해 책임지고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김순차 동경한국상공회의소 회장. 사진=백수정 기자
동경한국상공회의소의 제13대 회장인 김순차 회장은 일본 효고현 출신의 재일교포 2세로 에스에이 플래닝의 대표를 맡고 있다. 동경한국상공회의소는 재일한국인을 대변하는 일본내 대표 경제 단체로서 일본 도쿄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며, 대한민국 국가경제 발전과 재일한국인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고 한일친선 그리고 회원기업의 권익향상을 목표로 1961년에 설립된 단체이다. 기업인로서, 민단과 라이온스클럽, 일한친선협회 등 여러 한인단체에서 임원을 맡아 한일 양국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 회장은 오사카에 위치한 ‘코리아국제중고등학교’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사업과 교육에 대한 열정, 평소에 엿볼 수 없었던 그의 삶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기로 했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귀중한 시간도 조직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단체에 기부도 하고 직접 참여하고 활동하는 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회장이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코리아국제중고등학교는 ‘재일동포들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자유롭게 배울 수 있고 학력과 개성을 겸비한 창조적 인재, 국가를 넘어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학교 설립 당시 이사직을 맡은 초대 멤버였다. 재일동포 2세의 경제인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를 설립하였으나, 각자의 사정으로 하나둘씩 그만두고 학교의 운영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김 회장은 부이사장직을 거쳐 현재 이사장으로서 계속해서 학교운영에 지원을 해 왔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많이 어려워졌어요. 코로나 영향으로도 그랬고, 이제 IR(카지노를 포함한 종합형 리조트)도 생겨나게 되어 경영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고 저까지 학교를 떠나면 어떻게 해요. 직원들도 책임져야 하고 학교지원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사업 확장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받아들인 이상 책임지고 끝까지 지원해야죠. 학교를 우선으로 하고 있어요. 사람은 어려워졌을 때 지혜가 생긴다고 하잖아요? 여러모로 궁리를 하는 요즘 입니다”
그는 재일교포 2세로 자라면서 정체성 교육(민족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다가 효고현에서 오사카의 여러 지역과 도치기현까지 부모님의 일자리를 따라 전학도 많았다. 1955~60년대,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은 당연히 심했다. 일본학교를 다닌 김 회장에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는 장면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아이들이 즐겁게 피구를 했었어요. 맞추려고 공을 던졌는데 제가 공을 세게 던지게 되었는데, 그 공을 맞은 아이가 ‘너 같은 조센징, 조선으로 돌아가!’라며 소리쳤어요. 아이들이 모인 그 즐거운 분위기에서 말이죠. 그때 갑자기 눈앞이 까매지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부모님이 파친코 가게를 운영하니깐 주변에서는 재일교포인 걸 알고 있었죠. 물론 사이좋게 놀아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친구들에 비해 선생님한테 자주 맞았는데, 지금 생각 하면 차별이었던거죠. 시골이라 차별이 더 심했어요. 그래서 저는 시골에서는 다신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그는 한국 이름 본명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한국어와 한국역사, 한국문화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작년 도치기현에 김 회장이 기부한 돈은 도치키현 보건복지부의 ‘차별해소를 위한 사업’에 쓰여 졌다.
“차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구조의식에서 비롯된 겁니다. 옛날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꽤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도쿄에서는 아직도 외국인이 집을 빌리려면 힘들거든요. 이러한 사회를 바꿔 나가는 방법은 교육밖에 없어요”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해졌기에 오히려 차별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김 회장은 코리아국제중고등학교가 정체성교육(민족교육)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최근 신설된 K-pop 엔터테이먼트 코스가 인기도 많아지고 학생들의 대학진학 결과도 좋아 학생들에 대한 기대감과 뿌듯함을 전했다. 다만 학교 운영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학교 재정문제다. 간사이 지역에 있는 재외한국학교는 일본에서 일본교육과정을 채택한 1조교로 인정되어 ‘사립학교조성금’을 지원받고, 한국에서도 재외한국학교로서 지원금을 받고 있으나, 코리아국제중고등학교는 못 받고 있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1조교(一条校): 일본 학교교육법 제1조에 의거한 교육 시설의 종류 및 그 교육 시설의 통칭. 교육 과정은 문부과학성이 ‘교육과정의 기준’으로서 공지하는 학습 지도 요령에 근거해서 정해진다. 현재 재외한국학교 가운데는 백두학원, 금강학원, 교토국제학원이 1조교로 인가되어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1조교로 인정되어 사학조성금을 받으면 커리큘럼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국학교로 인정받기 위한 법규를 하나씩 클리어 해야 하는데, 교정 크기부터 당장 해결 해야해요”
김순차 회장은 코리아국제학원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사진=백수정 기자
김 회장은 2013년 TV가나가와와 한국 KBS가 공공으로 제작한 드라마, “희망의 날개 – 그때 우리는 13세였다”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일제통치 하 한국에서 우정을 꽃피운 두 소년이 헤어 진 후 41년 만에 재회하여 한일 양국의 우호친선을 위한 문화교류를 적극 전개해 온 실화와 ‘역사인식’ 문제를 바탕으로 TV가나가와 관계자들이 한일 공동 드라마 제작을 위하여 진력하여 온 점이 높이 평가되어 일본 국내에서 ‘제12회 방송인 그랑프리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밖에 한국영화 ‘박열’에서는 일본 내각총리대신인 ‘와카쓰키레이지로’역을 맡았다.
원래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극활동을 하고 있었던 김 회장은 교통사고로 잃은 형을 대신에 동생과 함께 가업을 물려 받아야 했다. 김 회장의 부모님은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 이사를 다녔고, 도치기에 와 성공한 친척을 도우며 일을 배워 망한 파친코 가게를 사서 시작한 가업이 올해 창업 54년째이다. 지금은 12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꿈도 많고 희망도 많다는 김 회장은 한 번 도전하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고 한다. 그러한 태도와 자세는 일찍이 많은 고생을 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생겼고 부모님께 참는 법 또한 배웠다고 한다.
“‘사회 공헌과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이 기업 이념입니다. 기쁨과 감동은 손님들에게 뿐만이 아닙니다. 직원들을 포함한 지역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주는 겁니다”
동경한국상공회의소 창립 60주년에서 개회사를 전하고 있는 김순차 회장. 사진=파이낸셜뉴스재팬
김 회장은 지난 2월 동경한국상공회의소 창립 60주년에서 코로나 불황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불황과 재일한국인을 둘러싼 어려운 상황들을 타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전진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회장이 후배 경제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먼저 멤버들과의 친목과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경한국상공회의소는 ‘올드커머’ 중심으로 설립됐지만 일본에 유학 등으로 입국해 경제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처음보다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에 일본에 입국하여 자리를 잡은 ‘뉴커머’를 김 회장은 또 다른 새로운 1세대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시대에 일본에 와서 다른 세대라 할 수 있지만 같은 민족성을 가지고 자신들이 각각 잘하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서로 배워가고 뭉친다면 더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회장은 30~40대의 후배들과 교류를 하기위한 모임을 갖기도 한다.
*올드커머(Oldcomer):1980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뉴커머와 대비하여 재일한국조선인과 대만인 등 구식민지 출신자 및 가족을 부르는 명칭.
“언어는 무기입니다.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가능성을 넓히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동경상공회의소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잘 한다면 커뮤니케이션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도 더 넓어집니다. 그리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편이 더 즐겁잖아요”
재일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사는 거는 당연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관계가 좋아지길 바란다는 김 회장. 하지만 양국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리고 교육을 통하지 않으면 차별문제 등을 포함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등 역사적 문제도 함께 해결되어야 합니다. 먼저 인정하는 것부터가 가장 좋은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인정한다는데 더이상 탓할 수 없게 되잖아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미래지향을 위한 베이스가 되는 거지요“
파이낸셜뉴스재팬 관서지국 백수정 기자
sjbae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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