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던 2020년이 지나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난 시간 속 코로나란 존재는 우리를 위협하기도 또는 무력감을 느끼게도 그리고 익숙한 무엇이 되어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이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는 가벼운 외출도 어려워졌고 사람들의 인원을 확인하지 않으면 모임도 성립되기 어려워졌다. 밤 9시 이후의 사람과 사람의 교류는 엄격히 제한되었고 사람들이 제각각 집으로 돌아간 거리는 적막하기만 하다.
식당과 술집 놀거리가 많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대표적인 서울의 중심지인 홍대 강남 그리고 이태원. 그 중 이태원은 작년 5월 클럽발 집단감염으로 다른 중심지보다 더욱 큰 타격을 받았다.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태원 주요 거리와 골목의 상권은 무너졌고 이태원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던 모 유명 연예인도 본인의 식당을 정리하고 이태원에서 발을 뺀지 오래다.
언젠가는 회복하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희망이 보이지않는 삶은 퍽퍽하다. 동네의 특성상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곳은 필연적으로 숙소가 골목 곳곳에존재한다. 호텔은 물론이고 수백명의 게스트를 다량으로 받는 도미토리 하우스부터 가족이 머물수 있는 작은 숙소까지 갖가지 형태의 숙소가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관광으로서울을 방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 요즘, 그들이 묵는 숙소 역시 폐업의 행렬에서 자유롭지 않다. 임대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만이 쓸쓸히 이태원의 현재를 보여 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태원의 부흥을 꿈꾸며 묵묵히 생업을 이어나가는 어떤 이가 있다. 현재 이태원에서 자가격리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호스트 지연 씨. 해밀턴호텔 앞쪽 앤틱가구거리 거리로 들어가면 앤틱샵 그리고 이국적인 레스토랑과 커피숍들이 이곳이 이태원임을 알린다. 주민들이 밀집해 사는 주택가 호젓한 골목을 바라보면 노란색 철문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곳이 게스트하우스 보라보라. 아주 오래된 단층주택을 개조한 이집은 원래 외국인 게스트들이머물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었다. 오픈 후 한달, 숙소가 아직 자리잡기 전에 코로나를 맞아 공실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괜찮아지자 마자 이태원 클럽발 사건은 그나마 있는 예약을취소시켰다. 세 달간의 공백기 후 해외입국자들의 의무적인 자가격리 의무가 생기며 조금씩 문의가 들어왔으나, 정부시설로 가야하는 새로운 규정으로 역시 또 한달 숙소를 비워둬야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일반숙소에서도 격리가 가능하다는 공문이 내려왔는데, 갑자기 조성된 정부시설에 해외에서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하는 입국자들을 모두 수용하기는 역부족이었기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해외입국자들의 예약을 받기 시작한 호스트. 그들의 각양각생의 문의에 대응하기 위해 매일 근처용산보건소에 들러 팩트체크를 하기를 몇 달. 매일 얼굴을 비치는 호스트의 모습이 직원들에게도알려졌고, 보건소로 쏟아지는 숙소 문의에 난감해 하던 담당자들이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그녀에게 용산보건소 협력 숙소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숙소를 확인하러 직접 구청 직원들이 시찰을 나와 안전 설비 등을 확인했고 그때부터 명실공히 공식적인 용산구 자가격리 숙소가 되었다.
숙소는 아담한 단층주택이며 자그마한 마당과 예전 장독대로 사용된 미니 옥상은 루프탑이 되었다.

세 개의 방에는 푹신하고 편안한 침대와 쇼파가 들어와 있으며 거실에서는 빔프로젝터로 영화를감상할 수 있다. TV에서는 넷플릭스를 바로 볼 수 있어 긴 격리기간을 무료해 하는 게스트들에게인기가 높다. 모든 청소와 세탁을 직접하는 호스트는 티끌하나 생기지 않도록 숙소 곳곳을 닦고 또닦는 작업을 한다. 방역기사가 게스트 입실 전 숙소 전체를 소독하는 것은 물론이다. 치안이 좋은 이태원이지만 게스트의 확실한 안전을 위해 대문 앞에 설치해 놓은 CCTV로 게스트들을 안심시킨다.
이 숙소는 원스톱 서비스를 표방하는데, 예약과 동시에 인천에서 숙소까지 이동을 도와 주는 안심택시와 연계해 게스트가 머뭇거릴 틈을 주지 않고 신속하고 안전하게 숙소까지 모시고 오는 것이큰 장점이다. 2년간 호흡을 맞춰 온 전담기사님과 실시간 연락으로 게스트가 숙소에 도착할 때 즈음엔 호스트는 숙소 앞에서 게스트를 맞아 주는 시스템이다. 문을 여는 방식과 낯선 숙소에 당황할 수 있다는 걸 무엇보다 잘 알고 있는 호스트의 배려다. 격리 게스트와 직접 대면을 꺼리는 다른 숙소와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스웨덴, 독일, 미국, 캐나다, 요르단,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일본, 중국, 베트남, 덴마크 등 여러 나라의 30여 그룹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무사히 격리를 마치고 이 집을 나갔다. 교포, 유학생, 주재원, 출장자 등 다양하다. 혼자서도 가족끼리 동료와 함께 구성원도 다양하다.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지만 소음이 상관 없는 구조라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도 선호한다.

가끔 게스트의 부탁으로 큰 악기나, 운동기구도 렌탈해 놓는데 독일에서 온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아름다운 곡을 마당에서 연주해 이웃 주민들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게스트가 입실 하기 전 보통 가족이나 친지들이 미리 방문해 냉장고를 채워 놓거나 집을 구경하도록 호스트는 권한다. 가족이 어떤 환경에서 머무는지를 알게 해 가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드리려는 호스트의 배려다.
서울에 친척이나 친구가 없거나 나홀로 격리자인 경우 장을 대신 봐 드리거나 불편한 부분이 있는지 챙겨 드리려고 노력한다. 특히 어플사용이 어렵고 전화로 일반 상점에 전화로 물건을 주문하기어려운 외국인 격리자의 경우 장을 대신 봐 드리거나 필요한 부분을 해결해 드리는 등 조금 더 살뜰히 챙기려고 한다는 호스트. 한달간 머물렀던 인도 가족은 퇴실 후에 딸의 급작스런 맹장수술 때회사가 아닌 호스트에게 연락해 의논을 부탁할 정도로 게스트에게 큰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일반 숙소에 모두 올 수 있는 한국인(한국계)과 달리 외국인은 기준이 다르다. 단기비자는 정부시설로 장기비자는 일반시설 입소가 가능한데 3촌 이하의 관계만 일반시설에 함께 머물 수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케이스는 덴마크에서 온 어떤 남성 게스트. 관광비자를 가지고 있는 여자친구와함께 격리를 하고 싶었던 장기 비자의 남성 게스트는 한국 입국 후 각각의 시설로 분류되어 이주간생이별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결국 한국 입국 이주 전에 혼인신고를 해 버리고 동반 입소를 해 숙소에서 행복한 허니문을 즐기고 있다. 한달간 호스트와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내린명쾌한 결정이었다.
이런 호스트의 배려는 그녀가 겪어온 경험에서 기인한다. 지연 씨는 강남의 모 학원에서 십 여년간학생들에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가르쳐 온 베테랑 강사다. 십 년 전에는 몇 달간 홀로 유럽배낭여행을 하며 수많은 숙소에 묵었다. 4년 전에는 일본 크루즈 피스보트의 유일한 한국인 스탭으로 승선해 4개월간의 지구남반구투어에서 통역과 강의를 담당했고 한국을 알리는 데 필요한 여러 이벤트를 기획했다. 20여개국의 나라에 하선할 때마다 그 나라만 의 곳곳의 독특한 숙소에 게스트로서묵었다. 이 모든 경험이 게스트의 니즈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호스트 지연 씨. 또한 항해 중 가장 인상깊었던 남태평양 아름다운 섬 보라보라는 숙소의 소중한 이름이 되었다.
자가격리 숙소로 전환하던 작년 4월, 가족의 걱정과 동료 호스트들의 거센 만류가 있었다. 실체가없는 병은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외부인 그것도 해외에서 오는 사람들을 동네에 오는 것에 대해주변인들이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주황색 격리 쓰레기 봉투, 골목에 인천공항이 찍힌 검은색 방역 택시의 등장, 캐리어를 끌고 오는 게스트들 모두 주변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숙소를 계속 운영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과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다는신념으로 주변인들을 설득하고 안심시키는 과정을 반복한 결과 현재는 동네 주민들에게 큰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숙소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약 9개월간 자가격리 숙소를 운영하며 단 한명의 확진자도 없었다는 게 호스트 지연 씨의 큰 자랑이며 자부심이다. 예약 전 게스트와의 정보 공유, 보건소와의 밀접한 소통으로 그리고 살뜰한 게스트 건강 관리로 인한 당연한 결과다.
우리에게 갑자기 닥친 이 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힘들어절망하고 주저앉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몹시 착잡해진다. 하지만 이런 위기 속에 서도 자신의상황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다음 스텝을 준비하며 씩씩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이런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손님들을 일일이 직접 다 챙기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씩 웃으며 대답하는 지연 씨.
“사람을 아주 좋아해요. 대단할 게 없어요. 외국에서 친척이 왔다고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행동이죠”
그 작은 희망을 부여해 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그녀의 앞으로의 묵묵한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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