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학자들을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에서 제외한, 이른바 ‘일본판 블랙리스트 사건‘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지난 1949년 출범한 일본학술회의는 각 분야의 학자들이 일본 정부에 정책 제언하고, 연구 예산배분 과정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학자들의 국회‘로 불린다. 일본 정부가 예산을 부담하지만,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 조직이 뉴스의 중심이 된 것은 스가 총리의 ‘전례없는‘ 거부권을행사하면서부터다. 스가 총리는 최근 일본학술회의가 자체적으로 추천해 올린 신규 회원 105명가운데 6명을 탈락시키고, 99명만 임명시켰다.
임명 대상에서 제외된 교수 대부분은 아베 정권 당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한 안보법 시행에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인물들이다. 오카다 마사노리 와세다대 교수, 아시나 사다미치 교토대 교수, 우노 시게키 도쿄대 교수, 도쿄지케이 의대 오자와 류이치 교수 등이다. 마쓰미야 다카아키 리쓰메이칸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조직범죄처벌법상 공모죄 신설이 추진되자, “전후 최악의 치안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스가 정권이 학자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가 총리는 “법에따라 적절히 대응했을 뿐“이라며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과학자회의는 5일 스가 총리에게 “학자, 연구자의 위기는 일본의 장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정부는 개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우편으로 보냈다. 이들은 담화에서“뛰어난 연구나 업적의 평가는 전문가 집단인 학술회의에서 하는 것으로, 정치가가 개입해 판단할여지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 1983년 국회 심의 때 정부 측이 “‘무늬‘만 추천제이지 학술회의가 추천한 사람은 거부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스가 정권에 의한 해석 변경은 절대용납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사립대학 교원 등으로 구성된 ‘일본사대교련중앙집행위원회‘도 성명에서 “일본의 학술이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것을 반성하면서 설치한 것이 학술회의“라며 “결코 권력자의 것이 아니다“고 일침을 놨다.
앞서 지난 3일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교토신문 등 3개 언론매체는 스가 총리 주재 조찬 기자간담회 참석을 보이콧하며, 정권이 임명 거부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가 총리는 지난달 16일 취임 이후 공식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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