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제공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19일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한국과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기금조성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안했다. 한국 외교부가 일본 정부에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힌 지 약 1시간 만인 오후 5시께, 일본 고노다로 외무상은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즉각 반응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가 제안한 ‘한•일 기업 공동재원 조성 방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외교부는 이번 제안의 배경으로 “소송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마련,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안은 한국 정부와 한•일 양국 기업 등 3자가 참여하는 기금안을 주장한 신각수 전 주일대사의 안과 흡사하다. 다만, 기금 조성 주체로 한국 정부가 빠졌다는 게 차이점이다. 외교부는 “일본 측이 이런 방안을 수용할 경우, 일본 정부가 요청한 바 있는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 2항 협의절차이 수용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번 제안은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7개월 만이다. 일본 정부가 중재위원회 설치 공세를 펼쳐나가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이렇다할 대응방안을 내놓지 않아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적지않은 비판에 시달려왔다. 그럴수록 일본의 중재위 구성 압박은 더해갔다. 정부는 아직 한•일간 외교적 협의가 끝나지 않았다며, 중재위 설치를 거부했다. 한국이 지난 18일로 중재위 구성에 관한 답변 시한을 넘기자 일본은 곧바로 이날부터 한•일이 아닌 완전히 제3국만으로 구성되는 중재위 카드로 전환, 법적 절차로 가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 역시 거부되면 국제사법재판소(ICJ)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기금안을 제시함에 따라 공은 일본에게 넘어갔다. 외교소식통은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한•일간 논의의 시작점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의식한 기습작전이라는 시각도 내놓고 있으나 외교부 관계자는 “G20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징용공 문제를 오사카 G20정상회의와 연계해 “한•일 정상회담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제안에 일본의 외교수장인 고노 외무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보냈다. 이에 조금 앞서 오스가 다케시 일본 외무성 보도관도 “한국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 “중재안에 응하라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간 양국 관계가 일본의 일방적 공세였다면, 이날을 기점으로 한국의 외교적 해법과 일본의 중재위란 법적 해법이 맞서는 구조로 전환되면서 역설적이게도 양국간 대화의 단초가 마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뉴스 조은효 특파원,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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