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경제·통상 라인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며 한미 관세협상이 분수령을 맞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외환 소진 우려를 고려해 달러가 아닌 원화 기반의 대안투자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교착 상태에 있던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 재무부 스콧 베선트 장관은 15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협상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세부사항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기간 중 구윤철 부총리와 논의할 예정”이라며 사실상 고위급 협상 재개를 공식화했다.
이에 앞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천공항 출국길에서 “한국의 외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은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를 둘러싼 외환 부담 완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 측은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분할 투자 같은 ‘시장 안정장치’를 요구해왔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원화 계좌를 활용한 투자안 등 새로운 형태의 안전장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달러 유출 부담을 줄이면서도 실질적인 대미 투자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이견을 좁혀가는 과정”이라며 “시한에 쫓기지 않고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도 “미국이 우리 수정안에 의미 있는 반응을 보였고 새로운 대안이 제시됐다”며 “양측이 금융적 기초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은 다음달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협상 타결의 목표 시점으로 잡았다. 베선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방문 후 한국으로 이동해 APEC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라며 “그 자리에서 정상 간 합의가 발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3500억달러 펀드의 운용 방식과 수익 배분 문제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거나 분할 납부 방식을 택하는 실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외환보유액 소진을 피하려면 일시에 집행하는 방식보다는 분할 투자로 전환하는 협상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한미가 ‘원화 기반 투자’라는 새로운 틀을 마련한다면 이번 협상은 단순한 관세 논의를 넘어 외환시장 안정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