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집권 초기 한·일 관계가 예상 밖으로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다. 성남시장 시절 일본을 ‘적성국가’라 칭하고, 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하수인 외교’라 비판했던 이재명이었기에, 대선 당시만 해도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는 일본을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고 규정하며 실용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일본 총리와 미국, 중국 정상보다 먼저 통화를 했고,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과거사 표현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7월 캐나다에서 열린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에서는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라는 표현으로 협력의지를 강조했다.
다만 한·일 관계의 최대 뇌관은 여전히 과거사 문제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는 ‘제3자 변제안’을 계승하는 모양새지만, 피해자 동의 절차가 불완전했다는 논란과 기금 재원 부족이라는 현실적 난제가 남아 있다. 일본 기업의 참여가 없는 가운데 한국 재계의 출연금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나오는 이유다.
‘위안부’ 문제도 여전히 미완이다. 2015년 합의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지만, 명시적 파기를 선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은 합의를 근거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을 주장하는 반면, 한국 사법부는 국가면제의 한계를 인정하며 배상 판결을 이어가고 있다. 현실적으로 판결 집행은 어렵고, 남은 일본 정부 기금 약 60억 원의 처리 문제도 미제다.
사도광산과 군함도 등 강제노동 유적에 대한 일본 측의 약속 불이행도 갈등 요소다. 유네스코 차원의 문제 제기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결국 양국이 직접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여기에 2028년 종료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구역 협정 역시 새로운 불씨로 꼽힌다. 국제법 변화로 일본이 더 유리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라 관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양국이 협력해야 할 현실적 이유는 분명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와 방위비 압박에 대응해야 하는 공통 이해가 있고, 미·중 갈등 속 무역 다변화 필요성이 커졌다. CPTPP 가입 문제, 나아가 한·일 FTA 검토까지 논의가 가능하다. 최근 한·일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가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은 긍정적인 배경이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과제는 분명하다. 과거사 문제에서는 원칙과 피해자 중심 접근을 유지하되, 안보·경제·사회문화 협력에서는 실용적 선택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국내 정치 변수, 국제정세 변화가 맞물려 있는 지금, ‘앞마당 이웃’ 일본과의 안정적 관계 구축은 이재명 정부 외교의 핵심 시험대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