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교 60주년특집 인터뷰 | 이동준 전 후쿠오카한글학교 교장
“한글학교에서 TOPIK까지, 교육 외교의 최전선에서 일본 속 한국어 교육을 설계하다”

3년 반 동안 후쿠오카한글학교를 이끌었던 이동준 교장이 지난 3월 퇴임했다. 후쿠오카에서 재일동포 교육과 한글학교 운영, 한국어 보급과 한일교육교류 협력사업에 이바지해온 그는 현재 도쿄로 거점을 옮긴 후 일본 내 한국어능력시험(TOPIK) 시행을 총괄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매력을 일본 전국에 전파하고 있다. 본지는 그의 퇴임을 맞아 일본에 오게 된 배경부터 한국어 교육의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10개의 질문을 통해 그의 철학과 비전을 들어보았다.
Q1. 일본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A1. 대학 시절, 국제교류센터에서 주관한 일본 기업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일본에서의 취업이 결정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했기에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고, 길어야 1년 정도 머무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후쿠오카에서 만난 분들은 서툰 일본어에도 불구하고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일본에서의 삶을 결심하게 된 것도 처음 정착했던 곳이 ‘후쿠오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2. 후쿠오카한글학교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A2. 2010년부터 교육부 소속 후쿠오카한국교육원에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학교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글학교 업무를 담당할 때 우리 학교에는 26명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토요일에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실에 앉아서 공부하던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좀 더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수업료를 낮춰 더 많은 친구들이 학교에 공부하러 올 수 있도록 하고, 선생님들 및 학부모님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며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한편, 한국에서 연수 등의 목적으로 후쿠오카에 방문하는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고, 한국에서 개최하는 캠프나 연수 프로그램에 아이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140명까지 늘어나며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재일동포 차세대 교육기관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Q3. 경희사이버대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A3. 교육원에 근무하던 시절, 후쿠오카에서 한국어 교사 연수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연수 강사로 오셨던 경희대학교 조현용 교수님의 권유로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육원과 한글학교는 모두 재외동포를 위한 교육기관이지만, 정작 실무를 담당하던 제가 ‘재외동포교육’이나 ‘민족교육’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 부끄럽고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론과 현장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논문을 통해 큐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재외동포교육의 현황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Q4. 교장 재직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성과는 무엇입니까?
A4.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학교를 소개하는 공식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재일동포 기업가들의 후원금을 유치함으로써 학교의 재정 건전성을 개선한 것입니다.
우리 학교는 1995년 개교 이래 약 2천 명에 가까운 수료생을 배출하며 올해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매년 운영비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학부모님들과 교직원 여러분의 헌신 덕분에 꿋꿋이 학교를 이어올 수 있었지만, 한글학교를 외부에 소개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제작할 여력은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키고 싶지만, 학교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학부모님들의 말씀과, “우리 학교의 역사와 가치를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개인 비용으로 홈페이지를 제작해 학교에 기부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글학교에 대한 신뢰와 관심이 더 넓은 사회로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재일동포 선배 기업가들을 직접 찾아뵙고 학교의 비전과 가치를 설명드리며 후원을 요청하였고, 그 결과 뜻깊은 후원금이 모여 학교의 재정 부담을 완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학교가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5. 후쿠오카한글학교의 교육 철학은 무엇이었습니까?
A5. 처음 개교할 당시 우리 학교는 귀국을 예정하고 있던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가서도 쉽게 학교 교육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과정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러나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동포 사회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아이들의 교육 수요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자아실현의 장을 어른들의 제한된 세상에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넓혀 주고 그에 걸맞은 비전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개편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Q6. 교장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A6. 매년 한글날 기념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더듬던 아이가 이듬해 대회에서는 또렷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던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Q7. 현재 근무 중인 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A7. 저는 공익재단법인 한국교육재단의 연구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일본 내 대학 등 교육기관,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협력하며 일본 내 한국어능력시험(TOPIK) 시행 및 정부초청장학생 사업(GKS) 중 한일교육교류협력사업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한국어 검정인 TOPIK은 일본 내 한류가 확산하며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하며, 코로나 이전까지 32개 시험장이었던 것이 현재는 60개의 시험장으로 늘어났고, 연간 응시자도 4만 명을 돌파하며, 일본 내에서 시행하는 제2외국어 시험 중 가장 많은 응시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어능력시험 급수를 취득한 응시자들이 한국 유학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작년부터 GKS 장학생 선발 업무도 맡아 한국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꿈을 키우고자 하는 일본인 학습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Q8. 일본 내 최근 한국어 교육 흐름을 어떻게 보십니까?
A8. 최근 일본 내 한국어 교육은 단순한 ‘한류 붐’에 따른 일시적 현상을 넘어서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중심으로 한 한국어 평가 체계의 정착과, 이를 활용한 진학 및 취업 목적의 수요 증가가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 주요 대학에서는 교양 과목 또는 제2외국어로서의 한국어 수강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은 교내에서 TOPIK 성적을 공식적인 단위 인정 기준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2024년에는 10대와 20대의 응시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기존에 상대적으로 한국어 수요가 적었던 지방 중소도시에서 TOPIK 응시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K-POP이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 소비를 넘어 단위 취득 또는 직장 내 인사고과 등의 목적을 가진 실용적 수요가 다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일본 내 한국어 교육은 단순한 열풍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으며 점점 고도화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입장에서, 앞으로 한국어 교육이 일회성 소비를 넘어서 깊이 있는 상호이해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Q9.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9. 일본 내 한국어 학습자들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TOPIK 시험장 확대와 디지털 교육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한국어가 일본 사회에서 실질적 가치를 지닌 언어로 자리잡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재일동포 청소년들이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이어갈 수 있도록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재일동포 청소년과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10. 한글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던 시간 동안, 토요일마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과 희망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참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지원해주신 교원 및 학부모님들, 재일동포 사회의 모든 분들께도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헌신이 있었기에, 한글학교는 일본 내에서 세대와 사회를 이어주는 소중한 다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해 나가는 따뜻한 공동체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조용히 “퇴임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그의 여정은 디지털을 타고 한국어의 지평을 넓히는 또 다른 교실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