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2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꺼내든 밸류업 정책은 출발부터 일본을 벤치마킹했다. 당시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외국인 자금이 몰리면서 증시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코스피 지수는 오히려 2.8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일본 닛케이지수는 30% 가까이 상승했다. 무엇이 두 나라의 운명을 갈랐을까.
핵심은 기업 지배구조다. 일본의 밸류업은 단순한 주가부양책이 아니었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 즉 장기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손질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워런 버핏이 2020년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을 각각 5% 이상 매입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종합상사는 일본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는 에너지·원자재 분야의 강자이자, 대기업 계열의 지주회사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일본식 기업집단은 총수 개인 중심의 한국식 재벌과 달리, 상사나 은행이 지배주주로 참여하는 분산형 구조를 갖는다. 버핏은 이 같은 구조에서 ‘합리적 변화의 신호’를 읽었고, 2024년 말까지 지분율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
버핏의 예상대로 일본 정부와 증시 당국은 지배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 금융청은 기관투자자의 행동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수차례 개정했고, 도쿄증권거래소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을 상대로 자발적 개선을 유도했다. 중복상장 해소, 상호출자 비율 감소 등도 착실히 이뤄졌다. 실제로 중복상장 비율은 2014년 9.7%에서 2023년 6.6%로 떨어졌고, 상호출자 비율은 10%대로 내려갔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상장사 18.4%가 중복상장 상태며, 상호출자 제한은 자산 규모에 따라 일부 대기업에만 적용된다. 밸류업이라는 이름 아래 증시만 흔들었을 뿐,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편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더스쿠프가 1편에서 조명한 상법 개정 지연 문제도 여기에 닿아 있다.
지배구조 개선이 단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만 인식되면 오산이다. 증시의 안정적 상승은 중산층 형성과 자산 양극화 완화의 핵심 조건이다. 미국은 S&P500 지수가 지난 30년간 연평균 9% 이상 상승하면서 가계의 증시 자산 비중이 3배 이상 늘었고, 자산 총액도 크게 증가했다. 반면 부동산 외에 신뢰할 만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한국 중산층은 여전히 ‘영끌’과 ‘전세 대출’에 내몰리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없이는 ‘한국판 밸류업’은 허상에 불과하다. 주가가 아니라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워런 버핏이 주목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