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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건넜지만, 자가격리로 임종 못지킨 딸

태평양을 건너온 딸은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 3월 27일, 미국에서 입국한 이승희(59세) 씨 이야기다.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한 이씨는 서둘러 귀국했다. 부친이 입원한 강원도 동해시로 달려갔지만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코로나19로 위독한 부친을 가까이에 두고도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이역만리에서 온 딸의 손을 잡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씨는 담당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 씨는 지난 24일 파이낸셜뉴스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처음엔 화가 많이 났다”며 운을 뗐다. 이 씨가 입국한 지난달 27일은 미국 입국자 자가격리가 처음 시작된 날이다.

동해시에 위치한 부모님 집에 머물게 된 그에게 수시로 전화가 왔다. 이 씨는 “첫날 시청, 보건소에서 4~5분이 두세 번씩 확인 전화를 했는데, 이렇게 까지 해야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그날 저녁, 담당 과장님이 전화를 주셔서 사정을 잘 설명해주시고 나서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자가격리 나흘만에 부친의 병세는 더 악화됐다. 담당 공무원과 병원은 이 씨의 ‘면회’를 추진했다. 읍압병동을 갖춘 곳이어서 면회가 가능했지만 그는 병문안을 다음으로 미뤘다.

이 씨는 “방역복을 입고 2m 떨어진 장소에서 10분밖에 볼 수 없었다”며 “저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생하실 거란 생각에 죄송스러웠다. 더 참아보기로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위독한 부친이 읍압병동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고려됐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새벽,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장례식장은 이 씨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입관하는 부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후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하관식, 삼우제에만 참석했다.

이 씨는 “앰뷸런스 기사님과 담당자분이 함께해주셨다”며 “어머니가 저를 만지고 싶어서 다가오셨지만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어머니도, 저도 울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내달 2일 한국을 떠난다.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와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출국 일정을 미뤘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담당 공무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다”며 “참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분들이란 사실을 알게됐다”고 거듭 말했다.

21년 전 한국을 떠났던 이 씨는 한국인의 애국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자가격리 중 한국 뉴스를 계속 봤다. 미국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며 “공동체를 위해 수칙을 엄격히 지키는 한국인들의 애국심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생각을 밝혔다.

파이낸셜뉴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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