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끄는 제목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책은 그로테스크한 제목과는 달리 청춘 연애 소설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여고생과 우연한 계기로 이를 알게 된 남고생이 그녀의 남은 일생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엮어내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여고생은 췌장에 병을 앓고 있다. 제목은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중요한 단어이다. 그 의미를 짐작케하는 내용이 책 중간에 나온다.
<발췌>
“어제 텔레비전에서 봤거든. 옛 사람들은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었대.”
“근데 그게 뭐?”
“간이 안 좋으면 간을 먹고, 위가 안 좋으면 위를 먹고, 그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처음에는 농담처럼 건넸던 그 말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상대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쓰인다. “췌장을 먹고 싶다”는 표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두 사람의 감정이 변화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췌장” 그리고 그것이 주는 두 사람의 감정 교류보다 “관계”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존재 의의”에 대한 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다.
[1] 주인공의 이름, 그것이 가지는 의미.
-소설의 결말까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남주인공
-처음부터 이름이 등장하고 그 의미까지 나타나는 여주인공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화자가 남자 주인공에 대해 갖는 인상을 반영하여 “사이 좋은 클래스 메이트”, “조용한 클래스 메이트” 등의 형태로 표현된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지 않음으로서 두 가지 소설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먼저, 화자들이 남자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특히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태도 변화를 남자 주인공에의 호칭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반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던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과 얽히게 되면서 여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의 친구들, 클래스 메이트들에게 하나의 존재로서 인식되게 된다. 그 과정이 각 화자들에 의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또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관계에서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 초반에 남자 주인공의 여자 주인공에게 “공병일기에 내 이름은 쓰지 말아줘”라고 부탁한다.
<발췌>
“나는 딱 한 번 <공병문고>에 대해 내 의견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 이름을 <공병문고>에 쓰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죽은 뒤에 그녀의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서 쓸데없는 추측이나 비난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자 주인공은 관계에 서툰 인물이었으며,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 연관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우연히 여자 주인공의 공병일기를 읽어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지만 극의 초반에 남자 주인공은 이것이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충동적인 행동일 것이라 자위하며 이 순간이 곧 끝나고 자신은 본연의 삶, 다시 말해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그 삶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존재감이 없는 삶,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얽히지 않는 삶, 무언가로 정의되지 않은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삶, 저자는 그것을 남자 주인공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형태로 표현했다.
반면 여주인공은 극의 초반부터 이름이 드러난다. 사쿠라, 한국어로 표현하면 벚꽃이라는 의미로 일본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흔히 쓰이곤 한다. 여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 나름의 의의를 밝힌다.
<발췌>
“좋아, 말해줄게. 실은 벚꽃은 꽃이 떨어지고 그 석 달쯤 뒤에 다음 꽃의 싹이 생겨나. 하지만 그 싹은 일단 잠드는 거야,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피어나려고. 즉 벚꽃은 자신이 피어나야 할 때를 지그시 기다린다는 거야. 어때, 멋있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의 삶과 비교했을 때 “피어나야 할 때를 지그시 기다린다”는 이름의 의의는 상반되어 있어 그녀의 인생을 더욱 서글프게 만든다. 이 말을 들은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답한다.
<발췌>
“그렇군. 네 이름으로 딱 어울린다.”
“아, 예뻐서? 부끄럽네.”
“그게 아니라 봄을 골라 피는 꽃의 이름이, 만남이나 사건을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너의 이름으로 딱 맞는다는 얘기야.”
남자 주인공은 자신과 달리 적극적으로 인간 관계를 맺어갈 뿐만 아니라 급우들 사이에서 관계를 주도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취성과 적극성을 엿보았고 그것을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너의 이름으로 딱 맞는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독자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남자 주인공의 특징을 잡기가 어렵다. 남자 주인공의 행동, 생각, 그리고 화자간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뿐이다. 반면 여자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특징을 잡기가 매우 쉽다. 그리고 소설 전체의 화자는 “남자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 수록 여자 주인공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여자 주인공과 독자 간에 일련의 관계가 형성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나는 이것이 “이름”의 유무에 따라 발생한 현상이며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이라는 것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라 부모로 대표되는 보호자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각, 사고, 특징 등이 이름에 묻어 자연스럽게 베어나오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밝히는 것으로 관계를 시작하며, 이후 상대방을 그 이름으로 호칭한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이름에 대한 표현을 통해 저자는 관계에 있어서 이름의 중요성을 여러 형태로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는 근거는 소설의 후반부에 들어가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2] 관계에 서툰 남자, 관계만으로 삶을 영위해 온 여자
여자 주인공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경위에는 반전이 숨어있으니 꼭 해당 소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자 주인공이 죽었다는 사실에 헤어나오지 못한 남자 주인공은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여자 주인공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건네 받은 공병일기를 읽고 남자 주인공을 오열을 하게 된다.
[공병일기_유언 중]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이름은 안 써줄 거야(웃음). 너 말이야, 너! 네가 이름은 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섭섭해 할 거 없어. (중략) 일기에도 썼지만, 나는 실은 그보다 한참 전부터 네가 마음에 걸렸어. 왜 그런지, 너는 알까? 네가 자주 말했던 그거야. 정답은, 실은 나도 생각했었거든, 너와 나는 분명 정반대 쪽에 선 사람이라는 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래서 왠지 마음에는 걸렸는데 도무지 친해질 기회가 없었어. 그러던 참에 우연히 맞부딪혔잖아. 이제는 뭐, 친해질 수밖에 없겠다, 라고 생각했지. 결과적으로 우리 둘, 이만큼 친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평상시였다면 절대로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공병일기”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이었다. 하지만 유언에 따르면 여자 주인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남자 주인공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으며 친해질 기회를 노리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어쩌면 “공병일기”를 남자 주인공이 우연히 읽게 되는 사건이 없었더라도 결국 두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공병일기_유언 중]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왜 너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라는 거야. (중략) 그때 그걸 너한테 물어봐도 될지 어떨지 망설였던 것은 혹시 네가 나를 싫어해서 이름을 부르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나는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돼. 게다가 그걸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 나, 자신감 같은 건 전혀 없으니까. 나는 너와는 달리 주위 사람들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이니까. (중략) 요즘 들어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여기서부터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해본 상상이야. 틀렸더라도 용서해줘. 너는 나를 네 안의 누군가로 만드는 게 두려웠던 거 아닐까?
앞서 남자 주인공은 공병일기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그 이유로 관계로 얽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한번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은 것은 이와 일맥상통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커져가는 그녀의 존재에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에 휩싸인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시한부였다.
여자 주인공은 유언의 말미에 남자 주인공을 동경해왔다고 밝힌다. 관계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자신과 달리 관계에 연연해 하지 않았기에 온전히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에게 관계의 의의와 함께 존재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오롯이 관계 속에서 존재해왔으며 생존을 위해서 철저히 관계를 맺어왔다. 현대사회에 접어들어 시공간의 제약이 과거에 비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관계를 맺어야할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관계에서 피로를 느끼며 극단적으로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의 형태로 발현된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가 일본이다.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수없이 많은 형식과 절차가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일본 특유의 호스피탈리티인 오모테나시라는 형태로 살려 세계 최고 수준의 접객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명암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뒷편에는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관계에 지친 이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극명하게 갈리는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건강한 관계맺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올바른 관계에 대해 제시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의 부탁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여자주인공의 절친과 만나고 친구가 된다.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는 내게 더 이상 청춘연애소설이 아니다. 존재의 의의와 건강한 관계 맺기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인간 관계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필명 : 하늘나는연어
소개 : 평일엔 기획자로 주말엔 잡식성 독서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생활 4년차 글쟁이입니다. 도쿄에서 열리는 한국인독서모임 (책책책을 읽읍시다@도쿄) 속 글쓰기 소모임, 필쏘굿 (筆 so good) 에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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