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이 지난 8월29일 600일 만에 구미 공장 옥상에서 내려왔다. 일본 닛토덴코그룹이 세운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벌어진 구조조정과 고용승계 거부에 맞선 고공농성이었다. 그는 “투쟁이 끝난 게 아니다”라며 땅을 밟았다.
사태의 출발은 외투기업의 ‘먹튀’ 방식이었다. 닛토덴코는 구미시로부터 토지 무상임대와 세금 감면이라는 특혜를 받고도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결국 화재 이후 생산물량을 평택 자회사로 이전하면서 노동자만 버리고 떠났다. 박 부지회장의 고공농성은 바로 이 불공정에 대한 호소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회 청문회 요구 5만 명 동의에도 미적거렸고, 정부는 대선 이후에도 사실상 손을 놓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중소기업가는 오히려 죄인 취급을 받는다. 대기업·외투기업의 탈출 전략은 방치하면서, 노동자와 시민의 분노는 결국 국내 중소기업으로 향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회피한 채, 노조는 투쟁의 상징을 만들었고 정부는 뒤늦은 립서비스로 일관했다. 결국 정치·행정의 공백이 600일의 극한 투쟁을 낳았다.
중소기업은 지역 경제의 뿌리다. 그러나 규제와 노사 갈등의 직접적인 타격을 고스란히 받는다. 외투기업은 특혜를 챙긴 뒤 떠나면 그만이고, 대기업은 협력사에 비용을 전가한다. 그 사이에서 중소기업가는 ‘고용승계’라는 책임을 강요받으며 이중·삼중의 압박에 시달린다. 노동자들의 절규와 중소기업의 현실을 동시에 외면한 정치권의 무책임이야말로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600일의 고공농성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투쟁이었다. 그러나 그 상징이 중소기업을 또 다른 희생양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먹튀 방지법’과 고용승계의 합리적 기준 마련이다. 노동자의 존엄도, 기업의 지속 가능성도 제도와 책임 있는 정치로만 지켜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묻는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은 여전히 희생양인가. 그리고 노조의 방식은 과연 해법이 될 수 있는가. 이제 답은 정치와 제도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