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24일, 해방 직후 일본 마이즈루 항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던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교토부 마이즈루만 인근에서 갑작스레 폭발하며 침몰했다. 일본 정부는 당시 조선인 귀환자 524명과 승무원 25명이 희생된 것으로 공식 발표했지만, 생존자 증언과 민간 추산에서는 수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원인은 해상 기뢰 충돌이라는 설명이지만, 사고 당일 기뢰 제거가 이미 완료됐다는 정황과 선체 내부 특정 구역에서의 의도적 폭발 가능성을 언급한 생존자 증언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폭발 직전 선원들이 한곳에 모이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뒤 폭발이 일어났다는 보고도 남아 있어, 우키시마호 사태는 단순 사고가 아닌 계획적 침몰 의혹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희생자 유족들은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 왔으나, 1992년부터 이어진 손해배상 소송은 교토지방법원의 일부 배상 판결 이후 상급심에서 모두 기각되며 의미 있는 진상 규명과 구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피해자 명단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확한 희생자 수와 책임 소재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025년 8월 7일 국회에서 열린 특별 세미나에서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단 구성과 한·일 양국 간 외교적 책임 규명, 피해자 유족에 대한 공식 사과 및 실질적 보상 절차 마련을 촉구했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이 요구를 수용해 구체적인 후속 조치를 신속히 이행해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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