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사키 에이코: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재일교포 탈북자의 이야기
가와사키 에이코는 1942년 일본 교토에서 경남 출신의 아버지 박종호와 전남 출신의 어머니 정정임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이다.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많은 재일교포들이 전후 극심한 빈곤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으나, 가와사키의 가족은 서로를 지탱하며 화목하게 살아갔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은 가족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쳤고, 가와사키 역시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삶은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활동가의 권유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당시 조총련은 북한을 조국으로 삼아 북한을 지원하고 귀국을 장려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었다. 가와사키는 조총련의 후원으로 교토 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에 최우수 성적으로 입학했으며, 모든 학비를 지원받는 ‘특대생’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무렵 일본에서는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북송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 정부와 여러 정당, 노동조합, 여성단체까지 북송 운동에 찬성하며 이를 지원했고, 조총련 역시 매일 대회와 집회를 열며 북송을 독려했다. 결국 일본과 북한 적십자사 사이에 북송 협정이 체결되면서 수많은 재일교포들이 ‘사회주의의 낙원’으로 향하는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
가와사키는 17세가 되던 1960년,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로 북한으로 떠났다. 북한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조총련이 약속했던 자유로운 생활과는 달리 북한은 개인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인권의 사각지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학 계열의 대학에 진학하며 조용히 지내고자 했던 그녀는 노동당 가입을 강요받았으나, 정치적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결과 가와사키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게 되었고, 자신이 북한 사회의 실체를 바라보면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김일성 사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김정일로의 권력 세습이 이루어지고, 북한은 대규모 기근으로 인해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지옥과 같은 환경으로 변해갔다. 가와사키는 “이 땅에 더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해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일본에 돌아온 이후, 가와사키는 탈북자들을 돕는 다양한 활동에 나섰다. 일본어를 모르는 탈북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은행 계좌 개설 방법, 교통 이용법, 병원 방문과 같은 일상생활 적응을 위한 지원 활동을 펼쳤다. 또한 여러 강연에 초대되어 북한에서의 경험과 그 실상을 일본 사회에 전했다. 그녀는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안전을 염려해 필명을 사용해 책을 출간하고, 본명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을 지속해 왔다.
북한을 탈출한 지 10년이 지나고 일본으로 돌아온 지도 9년이 되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상태다. 가와사키는 북한에 남겨진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더 이상 숨거나 피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있는 북한인 처(북송된 일본인 아내들)와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힘쓰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 사회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구하고 있다.
가와사키는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일본과 국제 사회가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고 행동하도록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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