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작년 조기·희망퇴직 실시 35곳중
절반 이상이 경영상황 좋은 기업
디지털 수용 더딘 중장년이 타깃
젊은 인재는 연봉 더 써가며 영입
일본 기업에 불어닥친 ‘흑자구조조정’ 칼바람이 이목을 끌고 있다. 구조조정은 기업 실적이 나쁠 때 하는 것이란 일반적인 경영상식과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적이 좋은 일본 기업들이 디지털화에 뒤처지는 고임금의 4050세대들을 대상으로 조기·희망퇴직을 실시해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것.
정보통신기술 발전을 대비하기 위해 젊은 세대를 미리 수혈해 미래사업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특히 일본의 과거 ‘잃어버린 20년’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잘나갈 때 경영체질을 바꿔놓겠다는 것이다. 세계 경기 침체로 수익악화에 직면해 뒤늦게 구조조정에 나서는 글로벌 기업들과 대비된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상장기업 중 35개사에서 총 1만1000명이 조기·희망퇴직했다. 조기·희망퇴직자가 1만명을 넘어선 2013년(54개사·1만7822명) 이후 6년 만이다. 동시에 전년도 기업 구조조정의 3배(12개사·4126명)에 달하는 규모다.
눈길을 끄는 건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한 기업(총 35개사)의 57%에 달하는 20개사가 흑자기업이라는 점이다. 인원 수로는 전체 구조조정 인력의 80%에 달하는 9100명이 흑자 회사 소속이었다. 구조조정은 실적이 나쁠 때 하는 것이란 상식을 뒤엎는 때아닌 칼바람이 일본에서 불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 내 흑자구조조정 붐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AI·빅데이터 등 4차산업의 도입 등 각종 신사업 진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기업들이 기존 사업분야와 그에 딸린 인원들을 대거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AI 등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 경영환경이 급변하자 소수의 기술인력과 젊은 인재를 중심으로 인력구조를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다. 그렇다보니 신기술에 대한 적응능력은 떨어지면서 고임금을 받고 있는 4050대 중장년층이 구조조정의 주요대상이다.
일례로 일본 주가이제약(중외제약)은 2018년까지 2년 연속 사상 최고 순익을 경신했지만 지난해 4월 45세 이상을 대상으로 조기퇴직을 실시해 172명이 회사를 떠났다. 아스테라스제약 역시 2018 회계연도 순익이 전년 대비 35% 증가했지만 지난해 3월 7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회사 측은 “기존의 기술과 전문성으론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며 인력 구조조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연공서열을 탈피하겠다는 흐름도 한몫했다. NEC(일본전기)는 지난해 3월까지 1년간 중장년을 중심으로 3000명을 정리했다. 대신 신입사원이라도 최대 1000만엔(약 1억500만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급여체계를 개편했다. 후지쓰 역시 2850명의 인력을 줄이는 대신 성과를 내는 직원에게는 연봉 4000만엔까지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대기업 50~54세, 45~49세 남성근로자 평균급여는 각각 월 51만엔, 46만엔이다. 반면 대졸 초임은 20만6700엔, 대학원 석사 졸업의 경우엔 23만8700엔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때문에 우수한 인재 확보를 위해서라도 획기적으로 급여체계 손질에 나서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니와 유니클로 등은 지난해부터 신입사원이더라도 우수한 인재에 대해선 연봉을 20% 더 얹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일본의 흑자구조조정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9개사가 연초부터 올해 조기·희망퇴직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상황. 이 인원만 총 1900명이다.
쇼와여대 야시로 나오히로 교수는 닛케이에 “일손 부족으로 대응하려면 중년층에 후한 임금을 젊은 세대에게 재분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흑자구조조정은 미래 먹거리 산업을 선점해야 한다는 조바심도 한몫했다. 과거 연간 인력 구조조정이 1만명을 넘어섰던 지난 2013년만 하더라도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기업들이 실적악화가 구조조정 이유였다.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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